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경제국제팀에서 일하고 있는 이종태 기자입니다.
얼마 전 정치이슈팀의 문상현 기자와 12·3 내란 이후 정국 상황을 나름 심각하게 인상을 그으며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자꾸 눈에 거슬렸어요. 그의 코였습니다. 나름 우뚝하게 잘생긴 그의 코 하단부에 빨간 선이 가로로 그려져 있었던 겁니다. 누군가 붉은 사인펜으로 칠한 것 같았어요. “당신 부인이 얼굴에 장난 친 건가. 당신들이 그럴 나이야?”라고 힐문했지요. 아니었습니다. 물렸대요. 키우는 강아지에게. 자신의 코를 강아지 코에 비비려 하는 순간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고 합니다.
문상현 기자의 불행을 기뻐한 것은 아닙니다만 한참 웃어줬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반려견 미미로부터 코는커녕 손도 물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자부심으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문상현씨, 미안).
올해로 열두 살인 미미 강아지는 하얗고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대다수 몰티즈들과 달리 미미의 코는 불그스름하게 벗겨진 흔적 없이 온통 검은 색깔로 녀석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그런데 제가 미미의 존재를 진하게 느끼는 것은 예쁜 자태를 구경할 때보다 녀석이 강아지답지 않은 짓을 하는 경우입니다. 강아지다울 때는 그냥 인형이지요.
미미는 집에 있을 때 언제나 거실의 높은 의자 위에 누워 있기를 즐깁니다. 자는 것이 아닙니다. 집 안 움직임 일체가 한눈에 보이는 요충지에서 경비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예컨대 미미는 제가 방에서 거실로 나가면 뚫어지게 쳐다보며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제가 현관문으로 가면 미친 듯이 짖습니다. ‘따라가고 싶어’로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미미가 “내 보호구역을 벗어나지 마. 나가면 위험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미미는 자신의 서열을 저보다 한참 위에 두고 있어요. 저 따윈 보호의 대상인 거죠. 함께 산책을 나갈 때도 저보다 앞서 걷습니다. 위험한 사람이나 짐승이 덤벼들면 몸을 던져 막아주겠다는 것 아닐까요.
증거는 또 있습니다. 미미는 여름엔 덥다며 제 곁에도 오지 않아요. 가을과 겨울에만 저에게 찰싹 몸을 붙이고 잡니다. 녀석이 세네 살 때엔 자다가 갑자기 가슴 위로 올라와서 제 뺨이나 입술을 핥으며 애정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강아지가 얼굴을 핥아대는 게 무는 것보단 훨씬 낫다는 것을, 문상현 기자는 알게 되었을 겁니다. 그래도 썩 좋은 느낌은 아니지요. 요즘은 당시가 그립습니다. 이젠 본인이 움직이지 않아요. 오히려 건방진 표정을 짓고 왼팔을 쭈욱 뻗어 제 얼굴을 자신에게 당깁니다. 손톱인지 발톱인지를 얼굴에 살짝 박기도 합니다. 그렇게 얼굴을 돌려놓고 핥는데, 이 또한 녀석과 저 사이 위계의 변동을 나타내는 상징 같아서 금석지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외에도 미미의 일화는 참 많습니다. 본인이 대여섯 살 먹었을 때 비로소 집으로 들어온 고양이 동생을 얼마나 아끼는지, 고양이가 집 안의 가구를 발판 삼아 날아다니면 얼마나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지, 커피숍에서 만난 분이라면 두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 끊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미미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지금도 미미가 사료 이외의 음식을 달라며 꼬리를 흔들거나 제 다리에 뺨을 비비면 강아지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과 우위를 느끼곤 합니다. 위에서 미미에 대해 제가 늘어놓은 이야기는 아마 공상에 가까울 겁니다. ‘개가 서열을 결정하는 법’ 같은 정보를 동물 관련 서적에서 읽고 옆에 있는 애먼 강아지에게 멋대로 적용했을 테지요. 심지어 강아지가 위계나 서열 같은 ‘관념’ 자체를 갖고 있는지 혹은 인간이 상상도 못하는 형태로 인식하고 실천하는지, 저는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듯합니다. 사람과 동물 사이만 그렇겠습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요즘엔 미미가 오래 누웠다가 일어나면 잠깐씩 다리를 절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제가 가끔 겪는 허리 통증을 연상시키며 어떤 동질감과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그 정도가 저와 미미를 잇는 유일한 고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변진경 국장이 갑자기 뉴스레터를 쓰라고 해서 정든 강아지를 갖고 너무 오래 팔아먹은 것 같습니다. 내란범 탄핵심판을 기다리는 초조한 하루하루, 모두들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