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사진팀 신선영입니다.
요즘 많은 분이 답답하실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속이 뻥~ 하고 뚫리는 소식이 좀처럼 없습니다. 뉴스레터를 쓰는 현재(3월27일 목요일)도 엿새째 확산하는 산불로 인해 피해가 늘고 있어서 마음이 쓰입니다. 경북 안동에 대피령이 내려진 3월25일 오후 지인에게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영상에는 지난해 하룻밤 묵기도 했던 지인의 집 뒷산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무사히 대피한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과 비가 많이 내리기를 간절히 비는 것 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진기자 일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재해, 사회적 참사, 전 대통령 탄핵 시기를 지나며 단단해졌을 거라고요.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었습니다. 뉴스 속보에 깜짝깜짝 놀라고, 현장에서도 전전긍긍하며 속앓이를 합니다. 아닌 척하는 머리와, 심하게 반응하는 몸이 따로 움직이는 상태입니다.
얼마 전 부모님과 통화를 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편입니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 세이브코리아 집회에 나온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의 발언 영상을 유튜브로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재밌다” “맞는 말이 많다”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정치적인 견해가 달라서 말문이 막히는 경험은 그동안 종종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많이 놀랐습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아빠 불교 신자잖아. 그쪽은 기독교 단체야”라며 종교의 힘을 빌려오기도 했으니까요.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 할지라도 정치적인 다름은 인정하고 사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유튜브의 순기능 역시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보내지는 지인들의 메시지 가운데 극우 유튜브 링크가 심심찮게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저에겐 ‘콘텐츠 필터링’이 당면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보수 일간지를 20년 넘게 구독해온 아버지와 합리적인 대화를 나누던 시절도 물론 있었습니다. 손에 꼽는 그런 기억 외에 사회 이슈를 두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마음에 좀 걸립니다. 조부모와 부모, 형제자매까지 대가족이 살던 유년 시절에는 물론이고요. 어쩌면 그 시절 그들은 이념보다 가족을 먹이고 키우는 문제가 제일 중요했겠죠. 성인이 된 후로 서울과 부산의 거리만큼 소통의 거리가 멀어진 점도 한몫을 했습니다.
3월22일 토요일, 서울 광화문에 모인 보수 단체 집회에 취재를 갔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 나이대 분들을 보며 ‘저분들은 그동안 어떤 생각들을 축적해왔을까’ 하고 말이죠. 그러다 보면 갑자기 짠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공고한 믿음이나 신념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긴 시간 숙성해 있다가 한참 지나서야 드러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접점을 찾기 힘든 지경에 도달한 ‘다름’이 저를 깜짝 놀라게 하며 등장할 때는 이미 늦은 걸까요.
하지만 저는 아버지와 등산을 다니며 수다 떠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아버지를 더 많이 닮았다고 믿을 정도로 정치적인 것만 빼면 잘 맞는 부녀지간입니다. 놀라지 않고, 밀어내지 않고 더 자주 대화를 나눠야겠습니다. 탄핵 선고가 난 후에는 꼭 고향 집에 내려가야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막힌 속이 조금은 풀릴 수 있는 소식을 독자분들께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