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시사IN> 문화팀 이상원 기자입니다.
님은 스포츠 좋아하시나요? 저는 축구광입니다. 매해 새벽까지 눈이 벌겋게 되어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챙겨 보곤 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열정도 다소 떨어져 지금은 그렇게 못합니다만, 여전히 응원 팀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은 꼭 챙겨 보는 편입니다. 아르헨티나 선수 리오넬 메시를 특히 좋아합니다. 드리블 능력이 기막힌 선수입니다. 수비수 넷, 다섯을 연달아 돌파해내는 메시의 모습에 친구들과 함께 열광하던 대학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축구에 관심이 많은 독자님이라면 사실 메시보다 발재간이 더 빼어난 선수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듣도 보도 못한 창의적인 드리블로 상대와 관중의 혼을 빼놓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메시는 별다른 ‘기술’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그의 기술적 능력이야말로 역대 최고라며,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몇 년 전 그의 팀 동료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메시가 경기 중 잔재주 부리는 걸 본 적이 있나요? 메시는 그러질 않습니다. 늘 ‘좋은 축구’를 하려 노력할 뿐입니다. 그런데 너무 좋은 축구를 하는 나머지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는 거죠.”
4월4일 낮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심판 기사를 쓰며 이 인터뷰가 떠올랐습니다. 헌재 결정문은 심미를 추구하는 글은 아닙니다. 고양된 감정을 가라앉힌 채 법리와 증거에 따라 내린 판단을 차분히 설명하는 글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지에 달한 기술은 구태여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결정문 전문은 직접 읽는 이 누구라도 설복될 만해서 기사로 굳이 설명할 것도 없어 보였습니다. 오히려 어쭙잖게 말을 보태 그 완결성을 해칠까 걱정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원전을 더 많은 분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기사를 썼습니다. 아직 못 보신 분이라면 결정 요지만이 아니라 결정문 전문을 헌재 홈페이지에서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광장을 가득 채운 친윤석열 세력이 어떻게 일거에 흩어졌는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합니다. 일부 목사들이 손을 떼 시들해졌다고 하고, 모종의 자금줄이 끊어져 동원 인력이 사라졌다고도 봅니다. 윤석열이란 인물의 핵심 지지층이 견고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저는 생중계된 헌재의 결정문이 그들 중 일부의 마음을 흔들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4월4일 그들은 알고리즘의 구덩이에서 잠시 빠져나와 잠자코 헌재의 소리를 청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칭 목회자와 유튜브 채널, 유사 언론의 이야기에 아무리 절어 있었든, 생각이 흔들릴 만한 내용을 듣고 말았습니다. 쉽게 풀이한 진리는 원치 않아도 마음에 스며듭니다. 아무리 고집 센 이도 맥을 못 추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2024년 12월3일 시민들이 윤석열의 쿠데타를 막았듯 전면적 내란을 억제하는 데 헌재 결정문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4월4일 이후에도 모든 일이 마법처럼 해결되진 않았습니다···만, 일단 한 주 휴가를 다녀오려고 합니다. 몇 달간 소홀히 한 가족구성원의 역할을 잠깐이라도 하고 돌아와 다시 정진하겠습니다. 언젠가는 아름다운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