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최근 경북 의성 고운사를 취재차 다녀왔습니다. 네. 사상 최악의 산불로 참혹하게 소실된 그곳 말이죠. 사찰 여행을 좋아해서 전국의 유명한 절을 꽤 가봤다고 생각했는데, 의성 고운사의 존재를 잘 몰랐습니다. 이번 산불을 커버스토리를 다룬 <시사IN> 제916호에서 변진경 편집국장이 고운사의 추억을 떠올린 칼럼을 쓴 걸 읽고서 언젠가 한번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민간 주도로 산불 현장을 답사하는 행사가 고운사 일대에서 열렸거든요. 저는 두 번 놀랐습니다. 하나는 변진경 국장이 ‘솔굴’이라고 말했던 고운사 소나무 길이, 화마를 입었음에도 정말로 너무 아름다워서였습니다. 청도 운문사 소나무 길 못지 않더군요.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 아래 살포시 자리잡은 고운사 경내와 주변 경관도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불에 타 형체가 완전히 사라진 계곡 위의 누각 ‘가운루’의 모습 앞에서는 그저 ‘아···’ 하는 탄식만 내뱉었습니다.
또 하나 저를 놀라게 한 건 ‘고운사의 나무들’이었습니다. 제가 고운사를 찾은 건 산불 이후 20여일이 지난 때였습니다. 사찰 양쪽의 산이 죄다 새카맣게 탔고 경내 주요 건축물이 무참히 잿더미가 됐는데, 놀랍게도 고운사 경내 몇몇 나무들이 ‘푸르른 잎’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과 같은 모습입니다. 고운사 일주문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멀리 새카맣게 탄 산과 대비되는, 푸른 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보이시죠? 이 나무들은 모두 활엽수입니다. 직접 산불 현장에서 본 결과 소나무 같은 침엽수는 거의 불에 타버렸지만, 활엽수 상당수는 살아남아 저렇게 잎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고운사 일주문에서 찍은 사진.
이번 산불 이후 소나무 등 불에 약한 침엽수림이 산불을 키웠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민족의 나무’ 소나무가 화재가 커진 원인으로 지목되는 걸 보면서 여전히 의아한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소나무가 불에 취악하다는 건 산림청도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이번 취재는 그런 ‘팩트’를 두 눈으로 생생히 확인한 현장이었습니다. 우리 산, 특히 영남권의 산이 애초부터 산불에 매우 취약했다는 점에서부터 ‘토론’이 시작돼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뜨거운 감자’가 남았습니다. 주무부처인 산림청이 의도적으로 이런 침엽수림을 조성하고 방치했는지, 임도가 정말 산불 진화를 위해 필요한지, 산림청이 산불 지휘를 맡는 것이 적절한지 등입니다. 이슈 하나하나 그 구조와 연원이 복잡하고, 주장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문제입니다.
확실한 건 사상 최악의 화마를 계기로 이제껏 공론화되지 못했던 이슈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점입니다. 산불 직후 제가 인터뷰했던 부산대 홍석환 교수 같은 이들의 주장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호응과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도 합니다. 산림청의 산림 정책이 실패했다는 주장이지요. 한 취재원은 “그동안 산림청은 등잔 밑에 있었다”라고 표현하더군요(취재원이 누구인지는 추후 기사를 통해 밝히겠습니다). 산림 정책과 행정이 대중의 무관심 속에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루어져 왔다는 지적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국토의 70%에 달하는 산에 대해 너무 모르고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골머리를 썩이고 있습니다. 이해관계의 복잡함, 주장의 첨예함, 사안의 심각함을 어떻게 독자님들께 전달해야 할지 고심 중입니다. 조만간 기사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