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정치이슈팀 이은기 기자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자주 가고 있습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과 그의 부하 김용현 형사재판 취재 때문입니다.
윤석열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다른 때와는 달리 법원 앞에 긴장감이 맴돕니다. 이날 법원에 들어가기 위해선 법원 정문에서 가방 검사와 몸수색을 차례로 받아야 하는데요. 윤석열 재판이 열리는 417호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도 한 차례 더 검사를 합니다.
가방 검사가 끝이 아닙니다. 윤석열 재판을 보려면 방청권이 필요합니다. 저는 취재기자 몫으로 배정된 방청권을 받는데, 거기 적힌 대로 통상 105번 좌석에 앉습니다. 재판부를 바라보고 앞에서 셋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앉으면, 시선 끝에 윤석열이 있습니다. 가끔 그와 눈이 마주칠 때도 있습니다.
김용현이 그러는 것처럼 대개 피고인은 맨 앞줄에 앉습니다. 그럼 검사들과도 직접 마주하게 되는데요. 윤석열은 이례적으로 둘째 줄에 앉아 있습니다. 그것도 변호인들에게 둘러싸여서 말이죠. 첫 줄에 있는 ‘피고인석’이라고 적힌 팻말 위치를 둘째 줄로 옮겼으니 된 걸까요?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는 관련해 별다른 주의를 주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형사재판 1차 공판(4월14일), 2차 공판(4월21일)에는 조성현 수방사 1경비단장(대령)과 김형기 특전사 1특전대대장(중령)이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로 출동했던 두 사람 모두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지만, 이행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조직에 충성해왔고, 조직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명령을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하며, 윤석열 앞에서 그의 말을 그대로 되돌려준 김형기 중령의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윤석열은 비열했습니다. 자기 살겠다고 두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몰았는데요. 예컨대 조성현 대령에게 ‘나도 국회의원 끌어내라고 지시 안 했고,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도 지시 안 내렸다는데? 넌 왜 그런 지시를 받았다고 하는 거야? 그리고 2024년 12월4일 새벽 1시2분에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가결됐고, 그때 특전사는 이미 철수 시작했다는데 너는 왜 부대 바로 철수 안 시켰어?’라고 묻는 식이었달까요.
우연히 윤석열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어떤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통령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무섭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느낌이다. 대통령은 알면 알수록 더 무서운 것 같다. 그 권력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를 절감해서다.”
그래서인지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의 직접 증인신문을 제한했습니다. “피청구인(윤석열)의 지위가 국정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그 산하에 있는 증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라고 봤기 때문인데요. 윤석열은 형사재판에서도 고압적인 태도로 검찰이 조성현·김형기 증인을 신문하는 중간중간 끼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귀연 재판장은 별로 제지하지 않습니다.
윤석열은 재판 내내 주로 눈을 감고 있습니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는데요.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재판정은 좁고(그나마 417호는 대법정이라 넓은 편입니다), 사람이 많아서 각자 내뿜는 숨과 체온으로 금세 공기가 답답해지거든요. 그런데 그런 그도 증인들이 본인에게 불리한 상황을 증언할 때면 분주해집니다. 물도 한 모금 마셨다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옆자리 윤갑근·위현석 변호사에게 열띤 코칭을 합니다.
윤석열 형사재판은 올해 12월까지 일단 28차례 더 진행될 예정입니다. 종일 계엄 당시 기록을 들여다보거나 재판정에 앉아서 윤석열과 그의 변호인들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모두 윤석열 파면 이후를 살아가는데, 저만 12·3 비상계엄 당시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윤석열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저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