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봄의 한가운데에서 인사드립니다. <시사IN> 편집국장 변진경입니다.
님은 일상 속에서 언제 어떻게 ‘힐링 타임’을 가지시나요? 요즘 지인들을 만나면 꼭 한 번씩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언론사 편집국장으로 살기에 일복이 터져 흐르는 시기, 짧게라도 환기하는 틈을 가지지 않으면 금세 인상이 험해지고 목소리에 짜증이 배어나게 됩니다. 가족과 직장 동료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힐링 타임이 절실합니다.
다행히 하루 20분간, 제겐 소중한 시간이 주어집니다. 평일 아침 둘째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왕복 길이 그 원천입니다. 후다닥 콩 볶듯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 등교 준비를 도운 다음 저도 급히 나갈 채비를 합니다. 초등 고학년에 들어선 둘째 아이는 “나 혼자 갈 수 있어”라며 나가는 김에 ‘음쓰’며 재활용 배출거리를 챙기느라 늦어지는 저를 가끔 내쳐버리려고도 하지만, 엄마는 꿋꿋이 “아냐, 금방 나가, 같이 가”라며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침 쓰레기 배출 일과를 마치고 공용 수돗가에서 손을 씻은 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으면 본격적으로 20분의 ‘힐링 타임’이 시작됩니다. 서울 시내긴 하지만 꽤 조용하고 숲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습니다. 아이 등굣길도 어느 시골 못지않게 한적하고 초록초록합니다. 들리는 것은 새 소리요, 보이는 것은 봄날의 나무와 꽃들입니다. 겨울이 지나기를 얼마나 바랐던지요. 새순이 뾰족이 올라오던 3월부터 아침 그 시간이 더 행복해졌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벚꽃과 매화와 복숭아, 살구, 자두의 꽃을 구별할 수 있으신가요? 저도 시골 출신이긴 합니다만, 정작 나무나 꽃에 대한 지식은 매우 일천하다는 걸 나이 들면서 점점 깨달아갑니다. 4월에 흩날리던 흰 꽃잎은 몽땅 벚꽃잎인 줄만 알았죠. 꽃송이 채로, 벚꽃보다 조금 일찍 낙화하는 매화 꽃 정도만 구별할 수 있는 ‘꽃 무지랭이’였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생각보다 동네 구석구석에 벚꽃과 비슷하게 희고 작은 꽃잎을 달고 있는 복숭아, 살구, 자두나무가 많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그 꽃잎들이 비슷하게 생겼지만 들여다보면 꽤 많이 다르다는 것도요.
전 이번 봄에 그 사실을 처음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벚꽃잎은 꽃잎 끝이 갈라져 있고 꽃자루가 길며 한 마디에서 여러 송이가 핀다는 사실, 매화는 꽃잎이 둥글고 꽃자루가 없으며 한 마디에서 꽃이 한 송이씩 피고 꽃받침이 뒤로 젖혀지지 않는다는 사실, 복숭아꽃은 꽃잎 끝이 뾰족하고 꽃자루가 매우 짧다는 사실, 살구꽃은 꽃잎이 둥글고 꽃받침이 뒤로 젖혀지며 한 마디에서 한 송이씩 핀다는 사실, 자두꽃은 꽃잎이 둥글고 꽃자루가 길며 한 마디에서 3~5송이의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고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중세 유럽 사람들처럼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진짜 그런가 하고 나무에 핀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진짜로, 꽃마다, 생김새가 다 달랐습니다. 세상에, 진짜 벚꽃잎만 꽃잎 끝이 갈라져있네. 세상에, 진짜 어떤 나무는 마디에 꽃이 하나씩, 어떤 나무는 마디마다 꽃이 서너 송이씩 달렸네. 세상에, 이 나무가 자두나무였다니(그런데 여름에 왜 자두 열매는 못 봤지?).
철쭉, 개나리, 목련 정도는 당연히 잘 알지요. 하지만 계획도시 속 빌딩건물들처럼 들어선 그 유명한 꽃들 사이사이에 마치 ‘노점상’처럼 총총총 자리잡은 들꽃들은, 님은 이름을 다 아시나요? 지나가면서 ‘다음 꽃 검색’이나 ‘네이버 렌즈’ 기능을 이용해 이름을 알아낸 들꽃 친구들을 여기에 몇 종류 소개합니다.
돌단풍 꽃: 꽃받침조각은 6개, 긴 달걀모양이며 끝이 뾰족한 친구. 수술은 6개이고 꽃잎보다 조금 짧다.
박태기나무 꽃: 진분홍색이지만 모양은 밥을 튀겨놓은 듯해서 ‘밥티기’라 불리는 꽃. 북한에선 ‘구슬꽃’이라 불린다.
참꽃마리 꽃: 연한 남색의 지름 0.7~1㎝의 아주 작은 꽃. 수술 부분은 노랗다.
쥐손이풀 꽃: 별 모양 꽃받침 위에 피는 지름 10㎜의 연한 붉은색 꽃. 5장 꽃잎마다 3개의 자주색 선이 그어져 있다.
변변찮은 실력으로 찍은 ‘박태기 꽃’과 ‘참꽃마리 꽃’ 사진도 함께 보여드립니다. 참꽃마리 꽃은 하도 작아서 스마트폰 렌즈로 초점 맞추기도 쉽지 않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