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편집소통팀 황정희입니다.
이번 편지에는 제 어머니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막내딸인 저에겐 구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가 계십니다. 혼자 살면서 트롯 경연 프로그램을 즐겨 보시고, 매일 한 시간여 불경을 독송하시며, 몇몇 친구분들과 전화 통화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십니다. 오전 나절에는 방문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고, 저희 형제들이 가까이에 살면서 자주 찾아뵙습니다.
여섯 달 전, TV 속에서 벌어진 비현실적인 장면에 모두가 눈과 귀를 의심했습니다. 탄핵소추안이 간신히 국회를 통과하고, 긴 헌재 판결로 마침내 파면. 그리고 선거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새 정부가 들어섰지요. 희망보다는 불안, 신뢰보다는 의심이 앞서는 나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안방에서 그 모든 순간을 함께 겪으며 고비마다 마음을 졸이셨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어머니는 한 후보를 누구보다 열렬히 응원하셨습니다. 종편에서 상대 패널이 당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거나, 이쪽 편의 설화로 그 후보가 구설에 오를라치면 부르르 화를 내시거나 불안해하시곤 했지요. “이번엔 걱정 마시라, 안 바뀌면 나라가 아니다” 하고 몇 번이나 안심시켜드려야 했습니다.
“표가 넉넉하면 나는 안 갈란다” 하시던 분이, 막판 지지율 격차가 줄어드는 걸 보고는 결국 휠체어에 몸을 싣고 투표장에 다녀오셨습니다.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자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나라가 잘되면 좋겠다”고 기뻐하셨고요. “정년을 한 2년 연장해주면 좋겠다”는 사심 섞인 바람도 덧붙이셨지요(제 뜻과 무관한 딸내미 걱정^^).
그런 어머니가 얼마 전부터 많이 쇠약해졌습니다. 팔다리 손발이 전보다 더 시리고 저리며, 혈액순환이 안 되어서인지 피부도 차갑습니다. 자녀들이 찾아뵐 때마다 파스와 핫팩을 붙여드리는 게 일과가 되었고, 제 손이 닿기라도 하면 “따뜻해서 참 좋다”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 사람 피부와 맞닿는 온기를 좋아하십니다. 걷기도 많이 어려워지셔서 보행보조기에 의지해 몇 발짝 옮기다 쉬시곤 하니 집 밖을 나서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며칠 전 생신을 맞아 서울 근교의 한식당에 모시고 나갔습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초록 풍경을 바라보며 “차 타고 바깥에 나오는 게 제일 좋다”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사시는 아파트에도 나무는 많지만, 야외에서 차를 타고 마주하는 초록은 훨씬 반가우셨던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 전만 해도 지팡이 짚고 지하철로 어디든 가실 수 있었는데,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는 끽해야 병원에나 모시고 가곤 했으니까요.
자식들에게 “바쁘면 오지 마라”고 버릇처럼 말씀하시지만, 막상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쁜데 뭐 하러 왔어?” 하면서도 반색을 하십니다. 말과는 달리 늘 누군가를 기다리시는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이지요.
어머니는 몸의 불편함에 비하면 여전히 총기 있으시고, 의사 전달도 정확히 하십니다. 깜빡 잊는 일이 가끔 있지만(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 대한 예의는 절대 잊지 않으십니다. 늘 인사를 챙기시고, 너무 그러시다 보니 자녀로선 “다정도 병이다” 싶어 짜증을 낼 때도 있습니다. 마음은 아직 ‘만기친람’이신데, 현실은 다른 이의 손을 많이 빌려야 생활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답답함을 말로 하시려니 ‘잔소리’가 많아진다 싶습니다.
최근 요양보호사가 바뀌었습니다. 조용한 성품에 정성껏 돌보려 애쓴다며 어머니도 편안해하십니다. 이전에는 (정치) 성향이 맞지 않거나 말투가 거칠어 힘들어하시다 여러 번 교체하기도 했습니다. 장기요양보험의 요양보호 서비스는 매우 필요한 제도이지만, 사람에 따라 서비스 질의 차이가 크기에 이용자 입장에서는 삶의 질이 많이 좌우됩니다. 연로하고 불편한 분들에게 더 따뜻하고 전문적인 돌봄이 제공될 수 있도록 사회적 노력이 더해지길 바랍니다.
이렇게 적다 보니 살갑지 못한 딸이 어머니께 해드려야 할 일이 뚜렷해지네요. 더 자주 찾아뵙기, 스킨십 많이 하기, 종종 차로 모시고 나들이 가기 등등. 모두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지요. 사랑은 결국 내 시간을 상대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라 했던가요.
독자님은 어떠신가요? 저희 어머니 같은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이 계신가요?
지난 호(제926호)에 인터뷰가 실린 정희원 교수(노년내과 전문의)의 ‘저속 노화’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게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노쇠 기간을 줄이자’는 이야기였죠. 불편을 호소하시며 “극락왕생”을 소원하시는 어머니를 뵐 때면 그 중요성이 실감됩니다. 더구나 어머니의 오늘이 제 삼십 년 뒤 모습일 테니까요.
새로 출범한 정부를 향해 수많은 바람과 요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머니처럼 연로한 분들의 삶을 개선하는 일 역시 새 정부의 과제 중 하나로 책임을 다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지지와 응원으로(!) 탄생한 이 정부가 성공하기를, “나라가 잘되어”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긴 여름 건강하게 나시길 바랍니다.
✍🏼 황정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