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정치이슈팀 PD 김세욱입니다. 요즘 야구에 푹 빠져 있습니다. 저는 현재 1등을 달리고 있는 한화이글스의 팬입니다(뿌듯). 프로야구를 봐온 분이라면 ‘1등’과 ‘한화이글스’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걸 잘 아실 텐데요. 저 역시 많이 낯섭니다. 순위표를 볼 때면 매번 밑에서부터 우리 팀을 찾았는데, 위에서부터 보는 게 어색합니다.
한화이글스 팬이 된 건,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간 야구장 직관 경기가 하필(?) 한화 경기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막역한 사이인 6학년 때 같은 반 친구와 친구의 아버지, 셋이 잠실 야구장을 갔습니다. 난생처음 간 야구장이었습니다. 충청도 출생인 친구 아버지는 충청을 연고지로 둔 한화이글스의 팬이었고, 따라간 저는 한화이글스 응원석에 순순히 앉았습니다. 다 함께 외치는 응원가가 어찌나 신나던지 목이 쉬도록 응원했습니다. 그날 상대 팀이 LG였는지, 두산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한화가 이겼는지 졌는지도 기억나지 않고요. 다만, 어둑어둑해진 밤, 야구를 다 보고 경기장을 나가는 순간부터는 선명합니다. 경기장에서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길. 쭉 늘어져 있는 야장 포장마차 한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순대볶음을 놓고, 친구 아버지는 소주를 친구와 저는 게토레이를 소주잔에 따라 건배했습니다. 고개 들면 보이는 거대한 야구장 외관과 밤새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별빛 같은 조명, 그리고 바람에 실려 온 밤공기 냄새가 기억납니다. 이날 저는 야구가 좋아졌고, 이 사랑을 하필(?) 그날 응원한 한화이글스에 바치기로 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한화가 어떤 팀인지 몰랐지요.
10위, 10위, 10위, 9위, 8위. 총 10개 KBO 팀 중 한화의 최근 5년 최종 순위입니다. 중간에 반짝 잘한 시즌도 있지만, 꼴찌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타 구단 팬들은 맨날 꼴찌 해도 하하 호호 웃으며 응원하는 한화 팬을 ‘보살’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어색할 때, 한화이글스 얘기를 꺼내면 좋습니다. 어디 팬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제 안의 보살이 미소 지으며 “한화이글스 팬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같은 한화이글스 팬이 아니고서야, 백이면 백, 상대방은 웃습니다. ‘어쩌다…’라는 속마음이 들리는 웃음이랄까요. 그게 나쁘진 않습니다. 첫 만남에 나와 상대의 벽을 허물어주는 마법 주문으로 애용합니다. 가끔 사람들이 묻습니다. 매년 하위권을 전전하는 한화를 왜 응원하는 거냐고. 저 역시 여러 차례 심각하게 생각해봤습니다.
한화이글스에 본격적으로 애정을 갖게 된 건, 대학생 때 읽은 박민규 작가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덕분인 것 같습니다(해당 작품은 일부 표절이 있었고, 작가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삼미 슈퍼스타즈 팀은 실제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꼴찌’로 상징되는 팀입니다. 과거의 한화이글스 같은 팀이죠. 더군다나, 1985년 삼미가 기록한 한국 프로야구 ‘최다 연패’ 18연패를, 2020년에 한화가 똑같이 기록한 공통점도 있습니다(맙소사!). 소설 속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하게 되면서, 비슷한 ‘현대판 삼미’ 한화이글스가 더 좋아졌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프로’ 야구의 세계에서 승부에 집착하기보다, ‘아마추어’ 정신으로 야구를 즐기는 삼미 슈퍼스타즈 팬들의 이야기입니다. 꼴찌를 할 때도 매번 ‘최강 한화’와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라서 행복합니다’를 외치며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야구를 즐기는 한화 팬들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경쟁으로 순위 매기는 ‘프로’ 세계와 달리, 즐기는 게 우선순위인 ‘아마추어’ 정신을 말하는 것 또한 이 책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당시, 저는 경쟁이 무척 싫고 두려웠습니다. 대학입시 경쟁이 끝나자마자, 취업 경쟁을 해야 한다니. 세상이 짜놓은 대로 떠밀려 살다간 내 삶이 존재하지 않을 거 같다는 초조함과, 주변 사람들은 다 달리는데 뛰지 않으면 뒤처져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이 공존했습니다. 야구를 인생에 비유해보면, 점수를 낼 수 있는 공격 타석은 경쟁에서 앞서나갈, 성공할 기회입니다. 그렇기에 타석에 들어서면 반드시 스윙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저 역시 대입, 취업 등을 위해 수없이 방망이를 휘둘러댔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제 노력과 별개로 도저히 치지 못할 공이 많더군요. 제가 아무리 잘해도 상대가 더 잘하면 패배하는 거니까요. 야구의 타석이 기록되듯, 삶의 타석들도 제 몸속에 기록됐습니다. 패배감이 하나둘 쌓이자 자꾸만 스스로를 탓하며 살게 됐습니다.
‘칠 수 없는 공은 치지 말고, 받을 수 없는 공은 받지 말자.’ 이 책의 한 구절이 패배감에 젖은 제 생각을 바꿨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자발적 거부’의 의미로 읽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타석에 안타나 아웃, 즉 성공과 실패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거부’라는 옵션도 있었습니다. 타석에서 ‘거부’의 결과는 아웃이나 운 좋으면 볼넷 아니겠냐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거부를 하면 야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애초에 내가 칠 수 없는 공을 던지는 상대에게 초조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상대방의 공에 끙끙대다가 아웃되는 것과 스스로 공을 치지 않고 아웃되는 것의 차이는 꽤 큽니다. 다시 타석 기회가 올 때 임하는 자신감부터 다를 겁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바로 ‘자발성’입니다. 다시 말해, 거부는 자신의 의지로 실현 가능합니다. 어차피 칠 수 없는 공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눈앞에 있는 투수의 공을 마주할 때, 제 안의 패배감은 줄어들 것입니다. 내가 못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칠 수 없게 한 것이죠.
칠 수 없는 공을 던지는 상대, 나아가 사회만을 탓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개인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야구의 룰을 익히고, 타격 훈련도 해보고, 경기를 잡고, 경기장 타석까지 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책에서 배운 것은, 이 모든 과정을 자발적 결정으로 해보자는 것입니다. 타석에 들어가는 준비부터 시작해서, 타석에 서서 투수의 공을 마주할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면 살면서 마주할, 패배할 수밖에 없는 순간까지 조금은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글을 쓰다 보니, 제가 속한 <시사IN>도 소설에서 발견한 ‘자발성’이 존재하는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2007년 삼성 기사 삭제에 항의한 기자들과 이들을 응원하는 시민들이 힘을 합쳐 창간한 스토리부터 그렇습니다. 용기 내어 ‘거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라는 점이 <시사IN>에 들어오고 싶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한화이글스 팬이 된 사연으로 시작해,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시사IN>까지 이 뉴스레터를 계기로 제가 좋아하는 대상들의 작은 연결고리를 찾은 거 같습니다.
저는 한화이글스가 어느 순위에 놓이든, 계속 즐기며 응원할 겁니다. 현재 1등을 달리는 이번 시즌마저도, 최종에 가서는 꼴찌가 될 수도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기분은 덜 좋겠지만, 다시 보살 미소를 지으며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치지 않을까요.
님은 야구를 좋아하시나요? 어떤 팀을 응원하시고, 어떤 사연으로 팬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세욱 P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