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비친 모습이 낯설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 눈물, 그리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한번 물면 끝을 보는 ‘독종 기자’가 평소답지 않았습니다. 뉴스타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압수수색-내란의 시작’에 등장한 한상진 기자입니다. 한 기자는 2023년 9월14일 이른 아침 집으로 찾아온 검사와 수사관들한테 압수수색을 당했습니다. 2022년 3월6일 ‘박영수-윤석열을 통해 부산저축은행 사건 해결’ 보도 때문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 검찰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이 보도 취재원인 신학림씨 사이 돈거래를 찾아냈습니다. 검찰은 뉴스타파 보도와 김만배·신학림 돈거래를 연결했습니다. 돈을 받은 뒤 허위 보도를 했다는 시나리오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실은 “희대의 대선 정치공작” 사건이라며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렸습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 부장검사 강백신을 팀장으로 검사 10여 명을 투입했습니다. 이들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하는 한상진·봉지욱·김용진 기자 모습이 ‘압수수색-내란의 시작’에 생생하게 나옵니다.
한 기자는 아마 분해서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압수수색 취재만 했지, 압수수색을 직접 당한 기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한 기자는 “압수수색을 당해보니 영혼이 털린 것 같더라”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요즘 압수수색 핵심은 휴대전화입니다. 휴대전화에는 개인의 삶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확장된 자아’로 보기도 합니다. 한 기자 말대로 휴대전화가 털리면 영혼이 털립니다. 이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이들이 검사들입니다. 수사 대상이 되면 검사들은 휴대전화를 버리거나 교체합니다. 라임 술자리 접대 검사들도 그랬고, 12·3 내란의 밤 직후 삼청동 안가에 모인 당시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 김주현 민정수석도 모두 휴대전화를 교체했습니다. 혹시 모를 수사에 대비해 ‘깡통 전화’를 만든 겁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수사선상에 오른 김건희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은 2024년 7월8일 김용진·한상진 기자를 기소했습니다. 검사 10여 명을 투입해 대대적으로 수사한 검찰이 적용한 죄명은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였습니다. 왕조 국가 시대도 아니고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에 이렇게 많은 검사를 투입하고 대대적으로 압수수색을 하고 기자들과 통화한 수많은 사람들의 통신 기록 조회를 했습니다.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입니다. 명예훼손을 당한 당사자, 즉, 이 사건은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기소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김용진·한상진 기자는 자신들의 재판에 윤석열씨를 증인 신청한 바 있습니다.
이 사건 검찰 수사와 기소는 윤석열 정부의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검사 출신 대통령과 검찰이 동일체임을 극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윤석열 정부 내내 국민의힘은 ‘가게무샤’ 정당이었습니다. 윤석열 정권을 뒷받침하는 실세 정당은 서초동에 있었습니다. 바로 ‘검찰당’입니다. 윤석열 정권 첫인사를 보면 그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실 인사기획관·인사비서관·총무비서관·공직기강비서관·부속실장·법률비서관, 법무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가보훈처장, 법제처장, 공정거래위원장, 금감원장, 국정원 기조실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에 검사나 검찰 직원을 꽂았습니다. 만약 저 자리에 모두 군 출신을 앉혔다면? 님, 우리는 군사정권이라고 규정했을 것입니다.
검찰은 집권 여당처럼 대통령 윤석열과 한 몸처럼 움직였습니다. 이전에는 검찰이 정치권을 대상으로 수사를 할 때 여야 균형을 맞추는 시늉이라도 했습니다. 야당 인사를 수사하면 여당 인사도 수사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은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여론도 무시하고 폭주했습니다. 전 정권의 정책마저 검찰은 수사를 했고, 야당 인사에 대한 검찰권을 남용했습니다. 반면 김건희씨 수사는 뭉개고 덮기에 급급했습니다.
최근 ‘검찰당’ 존재를 극적으로 드러낸 또 다른 사건은 심우정 검찰총장의 비화폰 사용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역대 검찰총장에게 비화폰이 지급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검찰총장에게 비화폰이 지급되기 시작한 건 윤석열 정부 때부터입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첫 검찰총장인 이원석 전 총장은 비화폰을 받았지만 사용하지 않고 있다가 임기가 끝나고 반납했다고 합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심 총장은 당시 김주현 민정수석과 비화폰으로 두 차례 통화했습니다. ‘검찰 독립’을 주장하던 검찰총장이 ‘내란폰’으로 통하는 비화폰으로 대통령실 민정수석과 통화를 한 것입니다. 논란이 일자 심우정 총장은 <한겨레>에 “검찰 정책과 행정에 관한 통화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검찰 정책은 법무부 장관과 논의하면 되지, 대통령실 민정수석과 논의했다는 변명도 부적절합니다.
12·3 내란의 밤을 지나 민주주의 회복의 봄을 보낸 뒤 개혁의 여름을 맞았습니다. 이재명 정부 개혁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는 검찰당 해체입니다. 제도 개혁과 인사로 검찰당을 해체해야 합니다.
검찰 개혁을 추진한 노무현 정권은 사람을 교체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제도를 고쳤지만, 윤석열 사단을 방치했습니다. 절반의 성공에 그친 이유입니다. 이제 이재명 정부는 제도도 고치고 사람도 교체해야 합니다. 국회는 검찰 개혁법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은 정당한 인사권을 행사해 검찰 개혁을 성공시켜야 합니다. 검사들이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문화도 바꿔야 합니다. 유권자인 우리들의 몫입니다.
22대 국회의원 가운데 검사 출신이 적지 않습니다. 김기표, 박균택, 백혜련, 송기헌, 양부남, 이건택, 이성윤, 주철현(이상 더불어민주당), 곽규택, 권성동, 권영세, 김도읍, 유상범, 유영하, 박형수, 정점식, 주진우(이상 국민의힘), 박은정(조국혁신당) 의원 등 18명이나 됩니다. 원내 교섭단체를 꾸릴만한 숫자입니다. 만일 군인 출신 의원이 300명 의원 가운데 18명이라면? 님도 과잉 대표된 것으로 생각하실겁니다.
진정한 검찰 개혁을 위해서라면 검사 출신 의원부터 숫자를 줄여야 합니다. 깨어있는 유권자들의 행동하는 표심으로 검사 출신 의원들을 국회에서 퇴출해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많은 검사가 의회에 진출한 나라는 드뭅니다. 정치 후진국인 일본마저도 검사들이 퇴직 뒤 의회 진출을 하지 않습니다. 검사들 스스로 부끄러워합니다.
검찰당 해체는 내란을 종식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금석입니다. 검찰 개혁은 짧은 시간에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 시행착오도 겪을 것입니다. 검찰 조직의 반발도 예상됩니다. 가야 할 길입니다.
“어지간하면 흔들리지 않은 멘털이라고 자부했는데 그날은 손에 쥔 우산을 들 수가 없었죠. 걸음도 옮길 수 없어서 비를 맞고 한참을 앉아 있었어요.” 다큐멘터리 ‘압수수색-내란의 시작’에서 독종 기자 한상진은 검찰 수사를 받고 나온 날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재판을 받으러 가며 한상진은 “꼭 이기고 싶은 재판”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이 재판의 승소를 응원합니다.
✍🏼 고제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