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시사IN> 문화팀에서 일하는 임지영 기자입니다. 제가 얼마 전 다녀온 김치찌개 가게에 대한 소개로 근황을 전하려고 합니다. 서울 이화여대 앞에는 3000원짜리 김치찌개를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밥이 포함된 가격입니다. 심지어 밥이 무한 리필입니다. 냉면 한 그릇도 1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시대에 생경한 풍경입니다.
제가 간 날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주로 청년들이고 외국인 학생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자리를 잡고 김치찌개를 주문한 뒤 한 입 떠서 맛을 보았습니다. 기대가 높지 않았는데 적당히 익은 신김치가 고기의 풍미와 어우러져 굉장히 맛있었습니다. 라면 사리를 곁들여 부지런히 식사하며 식당을 살폈습니다. 식당의 취지를 설명한 글귀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곳은 청년문간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청년밥상문간’입니다. 고시원에서 굶주림 끝에 삶을 달리한 한 청년의 사연을 시작으로 2017년 12월 설립되었습니다. 김치찌개를 3000원에 판매하며 지역 주민과 청년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날 단돈 3000원도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김치찌개를 먹었습니다. 누군가 이날 하루 손님들의 밥값을 다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이태원 참사로 딸을 먼저 보낸 강선이·이성환씨 부부입니다. 고 이상은씨는 1997년 6월29일에 태어났습니다. 짧지만 찬란했던 이씨의 삶을 기억하고 기뻐하기 위해 고인의 가족과 지인들이 그의 생일 즈음 이씨 또래 청년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그게 벌써 3년째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먹은 김치찌개는 생일상 메뉴였던 셈입니다.
생전 이씨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이씨를 모르는 손님들이 뒤섞여 한 끼 밥을 먹었습니다. 고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포스트잇에 써서 벽 한 면에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생일잔치답게 북적였고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강씨 지인의 소개로 들른 저도 활기찬 분위기에 기운을 보탰습니다. 국물을 삼키며 딸의 기일이 아니라, 생일을 기리는 마음에 대해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에는 이날의 자리를 다룬 기사의 댓글을 읽으며 체한 것 같은 심정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이날 일을 다시 떠올린 건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참사 희생자 유가족에게 정부를 대표해 공식 사과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였습니다. 세월호·이태원·무안 여객기·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유가족 200여 명이 청와대에 모였습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제1책임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며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 (중략) 정부를 대표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고인의 어머니인 강선이씨가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저를 보고 말했습니다. 어디서 본 적이 있지 않느냐고, 익숙한 얼굴이라고요. 처음 뵈었지만 성인이 된 이후 그런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자신의 지인과 닮았다고 말했습니다. 옆집 누나, 이모, 사촌, 동창 등 관계도 다양했습니다. 저도 익숙해져서 그만큼 흔한 얼굴이려니 하고 넘어갑니다만 이날만은 오래 그 말이 남았습니다. 나와 내 이모, 사촌, 동생, 이웃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먼저 겪은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반갑게 제 손을 잡은 강씨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저도 되도록 힘차게 흔들었습니다.
✍🏼 임지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