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근길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저는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버스를 타고 홍대입구역으로 나와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해 곳곳을 다녔습니다. 흔히 말하는 ‘주거 환경’이 좋은 동네였어요. 홍제천과 가까웠고, 연남동과 연희동은 앞마당이었고, 젊은 인구를 쉽게 만날 수 있었죠. 매력적인 유행이나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가던 도전적인 소상공인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마을 책방도 있고, 맛집도 많고. 활력 있는 1인 가구가 많은 동네였습니다.
그러다 이사를 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을 타야하는 경기도 어느 도시의 구도심 지역입니다. 연고는 없지만 취재하며 다녀본 경험이 있던 터라 이사 한 번에 일상이 크게 변하진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신기합니다. 확실히 많이 달라요.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제가 하루에 마주하는 사람들의 연령대입니다. 중소도시 구도심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의 평균 연령은 매우 높습니다. 아이들을 보긴 더더욱 어렵고요. 젊은 인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1호선 열차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2호선의 풍경과 미묘하게 다릅니다.
저는 ‘1호선 빌런’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지역을 찾는 사람들이 긴 시간 몸을 맡기는 1호선의 모습은 서울 안에서 순환하는 2호선의 시선에서 보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 겁니다. 한국 사회에서 조금 더 평균적인 삶의 모습은 1호선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통계에 근거한 논증이 아니라 경험과 감각에서 비롯된 인상평이라 제가 틀릴 수도 있겠지만, 보다 한국 사회의 평균에 가까운 소셜믹스를 경험하는 공간은 2호선보단 1호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평균에 상당히 집착하는 편입니다. 평소 취재 포인트와 대상을 취사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수도권 병원의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어느 한 곳을 찾아가야 한다면 어딜 가는 게 좋을까요? 우리나라 중앙 언론사들은 대부분 광화문 인근에 모여있기 때문에, 동선상 유리한 곳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면 아예 ‘가장 큰 병원’ ‘다섯 손가락에 드는 병원’ 따위를 찾거나요. ‘서울 사례’를 샘플링하기 위해 은평성모병원을 찾아가거나 강동성심병원을 방문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수도권 사례’을 찾아보려고 안산고대병원이나 인천 인하대병원을 구태여 찾아보는 일은 거의 없죠.
몇 년 전 서울 전역의 주택 가격 문제를 기사로 쓴 적이 있는데요. 이때 가격 변동 ‘샘플’로 아파트 단지 하나를 예시로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온갖 경제지에 등장하는 ‘헬리오시티’ ‘마레푸’ 따위를 예시로 들고 싶진 않더라고요. 가급적 서울의 평균에 가까운 단지를 골라보고 싶었고, 그러다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한 대단지 아파트(그래도 그 동네에서 꽤나 잘 알려진)를 골라 예시로 든 적이 있어요.
물론 이건 저 개인의 똥고집(?)입니다.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언론이 강박적으로라도 가급적 평균과 평범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제 기사에서 시장 흐름을 보여주려면 가격을 이끌어가는 ‘대장급’을 다루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죠. 사회 기사에서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냥 저 같은 놈도 한 명쯤 있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겁니다. 일주일 생활비를 아껴 주말에 명XX사갈비에서 외식하는 가족도 있을 것이고, 연남동 유명 제과점의 빵값을 들으면 놀라 자빠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 강남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에서 유명 디저트를 픽업하는 게 취미이거나, 호주산(?) 스테이크 체인점의 음식이 몹쓸 맛이라고 평가하는 분들도 계시겠죠. 그래서 평균은 어렵습니다.
저는 기자에게 두 가지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첫째, 우리 시대의 평균과 평범함이 무엇인지 감각적으로 놓치지 말 것. 둘째, 사회의 변화와 트렌드에 민감할 것. 그런데 최근에는 이 두 가지 감각을 모두 곤두세우는 게 가능한 일인지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전에는 양자택일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는데, 요즘에는 두 감각 사이의 간극이 크게 느껴진다고 해얄까요. 뜨거운 밤공기를 뚫고 퇴근할 때면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발휘하는 게 가능할까? 그리고 만약 둘 중 하나를 발전시켜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잡설일 것입니다. 사실 기자 일의 본질은 개인의 감각보다는 취재원과의 교류와 접촉에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무엇을 발제하고 무엇과 교류·접촉할 것인지 선택할 때마다 감각은 동원됩니다. 서울 마포와 서대문에서 저는 안락했습니다. 거기엔 친구도 많고,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세상의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1호선 열차로 접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변화, 그리고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에 좀 더 집중해야겠다 싶습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이사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2호선의 세상은 안락하지만, 그만큼 외선순환 바깥의 일상과 격리되기 쉽습니다. 불안하고 불온하고 불완전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세상의 평균과 멀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많은 기자 중에 그런 사람이 조금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막상 이런 각오를 타이핑 해놓고 보니, 아직 정신 못 차렸다는 생각도 들지만요. ㅎㅎ.
✍🏼 김동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