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님. <시사IN> 정치이슈팀 김영화 기자입니다.
8월21일 목요일 오후, 기사 마감을 막 끝내고 뉴스레터를 씁니다. 편지를 받으실 토요일은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처서인데요. 방금 전 ‘올해 처서는 더위가 심화된다’는 연합뉴스 속보가 떴습니다. 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더니 올해 여름은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다들 무탈하신지 안부를 여쭙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오늘 바깥 날씨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유튜브팀에 있다가 1년여 만에 지면으로 복귀를 했는데요. 마감날 잊혔던 오랜 감각이 되살아났습니다. 퀭해진 눈, 어지러워진 책상, 속절없이 지나가버린 마감 시간, 좀처럼 기사 마무리가 안 되는 막막함, 그때쯤 찾아온 ‘기사 언제 줄 거냐’는 국장의 연락,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느낌···. 언젠가 선배들이 “마감은 해도 해도 적응이 안 된다”라고 했던 말이 불현듯 스치며, 다시금 괴로운 목요일입니다.
약간 과장을 했는데 매주 그러진 않습니다(하하). 지난주에 꽤 긴 기사를 마감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대통령실 브리핑 생중계 이후 달라진 풍경과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개방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요. 언젠가부터 유튜브 쇼츠로 기자의 이름과 얼굴이 ‘박제’되어 바이럴되는 걸 보고 문제의식이 깊어졌습니다. 질문하는 기자에 대한 인신공격과 조롱이 댓글로 이어지고 있었거든요. 남 일 같지 않기도 했고요. 인터뷰에 응한 몇몇 기자들이 개인적으로 받은 협박 메일을 참고만 하라며 보여주었는데, 욕설의 수위가 정말 심각했습니다. ‘어쩌다 기자가 이렇게 미움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자주 착잡해졌습니다.
‘왜 저런 질문밖에 못하느냐’는 날 선 반응들을 살펴보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클로바 노트가 나오기 전까지 인터뷰 녹취 푸는 게 가장 고역인 사람이었거든요. 매번 저의 부족함을 낱낱이 들여다보게 한달까요. ‘이때 이 질문을 왜 안 했을까’ ‘여기서 왜 바보같이 웃었지’ ‘취재원 반응이 안 좋은 걸 보니 저 말은 괜히 꺼냈나’ ‘왜 저렇게 주절주절 했지’ 등등 어느 순간 후회와 자괴감으로 뒤범벅되고야 맙니다. 클로바 노트가 이러한 고생을 많이 줄여주었으나 여전히 취재 과정을 되짚어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습니다. 확신에 찬 순간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다행, 대부분은 불안과 싸웁니다.
물론 취재원에 따라 질문의 방식이 조금씩 다르고, 정치인 대상 기자회견에선 주로 명료하고 깔끔한 질문이 요구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하려면 기자 스스로도 확신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사회가 바라는 ‘좋은 질문’ ‘좋은 기자’의 모습이 너무 획일화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강인하고, 조리 있고 또박또박한 말솜씨에, 기자 정신 투철한 어떤 상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되는데요. 분명 훌륭하고 바람직한 모습인데, 어쩐지 ‘진짜’ 같지는 않습니다. 이번에 인터뷰했던 대통령실 출입기자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데요. “기자들마다 자기만의 질문 스타일이 있잖아요. ‘우문현답’이라는 말처럼 때로 엉뚱한 질문에서 중요한 대답이 나올 수도 있고, 질문 행위란 게 애초에 여러 가설을 검증해가는 불완전한 과정일 수밖에 없지 않나요?” 그의 말에 저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바보 같은 질문’ 혹은 ‘취재의 빈틈’이라 여겼던 순간들 덕분에 기사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취재원이 답답해하며(?) 더 설명을 덧붙여주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예상치 못한 중요한 코멘트가 나오기도 했거든요. 결국 질의응답 과정 자체가 ‘우리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파악해가는 여정이 아닐까요. 돌다리 건너듯 하나하나 두드려보면서요. 그러니 모든 질문은 오류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왠지 위로가 됩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에선 브리핑 생중계가 시작되고 질의응답이 승패가 나뉘는 일종의 결투장이 된 모습입니다. ‘기자 질문에 버럭한 대변인’류의 쇼츠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저라도 질문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꼬투리 잡히지 않는 질문이 최선인가? 취재 과정이 퍼포먼스가 되는 건 아닐까? 대통령실이 언론 길들이기 의도가 있었다고 보지 않지만, 일부 기자들은 브리핑 생중계 이후 질문하기가 매우 우려스럽다,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그 정도 댓글도 무서워서 질문을 못할 만큼 근성이 없으면 기자를 왜 하느냐? 하는 물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취재를 하며 비슷한 반응을 많이 만났고, 저 스스로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는데요. 박영흠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런 문제의식을 띄웁니다. “더 이상 피도 눈물도 없는 ‘기자 정신’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라고요. “세상도 기자에게 그런 정신을 요구해선 안 되고, 기자도 그렇게 취재하거나 생활해서는 안 됩니다. 기자도 사람이고 노동자고 가족이 있습니다. 혹독한 사이버 폭력을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라고 회사가 요구해선 안 되고, 본인도 그렇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는 온라인 괴롭힘이나 악성 댓글이 무서운 범죄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너무 부족한 탓이라고 설명하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과거 기자가 특권의식을 내세워 과도한 특혜나 권력을 누렸던 역사적 경험이 강해서 기자 직업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요구하는 일은 금기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사회적으로 진지한 문제의식을 갖고 해법을 모색하는 연구나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량상 기사에 담지 못했는데, 중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뉴스레터에 기록해봅니다.
며칠 내내 ‘대통령실 기자 참교육’류 유튜브 쇼츠를 모니터링했더니 언론 혐오를 해소하는 일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히 언론이 가진 여러 문제점이 있고 정파적이며 악의적인 보도는 감시받고 견제되는 게 맞지만, 그럼에도 현장에서 뛰는 기자 개인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십사 당부를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저처럼 고군분투하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이번에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나왔던 ‘질문하는 마음들’을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대통령실발로 쓰는 기사들이 그 아래 단위의 세세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텐데, 잘못된 시그널을 주면 안 되니까 매번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요.” “기자라는 직업은 불편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 시대에 기자를 하려면 이런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고민이 많이 됩니다.” “권력에 해명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판받는다고 질문을 안 할 수는 없겠죠.”(더 자세한 내용은 <시사IN> 제936호 ‘개혁인가, 길들이기인가···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변화를 둘러싼 질문들’ 기사를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기사 마감을 했는데도 이렇게 할 말이 길어지다니, 언론과 정치 이슈는 특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저는 어서 물러가보겠습니다. 다들 마감 없는 평안한 주말 되시길요!
✍🏼 김영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