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편집소통팀 김완숙입니다.
처서가 지났건만 한낮에도 35℃에 육박하는 날씨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지난주 마감 날에는 출근하려고 집 밖을 나섰는데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버스를 타러 가다가 신발이며 옷이 흠뻑 젖었습니다. 그런데 두 정류장 거리인 전철역 근처 도로는 비 한 방울 묻지 않았고 하늘도 맑았습니다. 이런, 국지성 호우였습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새삼 깨닫습니다.
독자님은 올여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저는 올여름을 길고 수고스럽게 보내고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둘째 아이가 여름방학 전날 학교 행사 때 왼쪽 새끼발가락 쪽 발등의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체육관에서 축제를 했는데 많은 아이들이 단상 위로 올라와 춤을 추다가 둘째 놈이 밀려 넘어지면서 발목이 접질린 것입니다. 아들 키우는 부모가 으레 그렇듯 학교 보건 선생님께 연락을 받았을 때는 별일 아니겠거니 싶었습니다. 살짝 접질렸겠지? 그런데 아이가 통증을 호소하고 걷지도 못하기에 남편과 때마침 여름방학이어서 집에 있던 고등학생 큰아이가 동생을 업고 집 앞 정형외과에 갔습니다.
엑스레이와 CT를 찍은 후 의사가 저를 불렀습니다. 뼈가 부러졌다고요. 전문용어로 ‘중족골 골절’이랍니다. 수술을 해야 하니 MRI를 찍으랍니다. “부러진 뼈에 핀을 꽂아 고정하는 수술로 비교적 쉽지만 반신마취는 할 거다.” 정신이 없는 저에게 간호사가 말합니다. “어머니, MRI는 비급여라 40만원이고 목발은 3만원이고 반깁스 신발은 2만원이고 냉동치료는 3만원이고 어쩌고저쩌고. 지금 결정해주셔야 해요.” 그리고 저는 상담실장에게 넘겨(?)졌습니다. 오늘(금요일)은 늦어서 다음 주 월요일에 입원해 수술한다, 수술비는 250만원 정도 나올 거다.
이거 뭐지? 저는 검사비로만 52만원을 결제했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진통제 처방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아픈 아이를 업고 집으로 오면서 기분이 너무 찜찜하고 언짢았습니다. 그럼 이 간단한 수술을 하는 데 총 300만원이 든단 말이야? 집 앞 정형외과는 의원급입니다.
남편이 버스공제조합에 다니는 지인에게 연락해서 서울의 한 병원을 소개받았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집 앞 정형외과가 문을 열자마자 엑스레이·CT·MRI 영상자료와 의무기록지를 받아서 소개해준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 병원은 10층가량 단독 건물로 정형외과·신경과·신경외과·내과 등 규모가 꽤 있는 편이었습니다. 이곳 의사 선생님도 영상을 보고는 “수술합시다” 해서 월요일에 입원해 화요일에 수술했습니다. 간호사 수도 많고 조금만 불편하다고 하면 금세 달려와서 처치해주었습니다. 2인실에 이틀 입원해 있었는데, 보아하니 이 병원에는 주로 허리나 목디스크로 수술하신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듯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최연소였고요. 아이가 수술실에서 올라올 때 저는 깜빡 졸고 있었는데, 간호사·간호조무사 합쳐 대여섯 명이 아이를 수술용 침대에서 병실 침대로 옮겨 누이고 추워서 벌벌 떠는 아이에게 전기담요를 덮어주고, 링거 줄을 정리하고 아파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도 아침저녁으로 병실을 다녀가시고요. 뭐랄까요? 정성껏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기분이었습니다.
수술 당일은 아파서 잠을 못 자고 힘들어했지만 아이는 깁스를 한 채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비 계산을 했는데, 2박3일 입원에 2인실을 썼는데도 57만원이 나왔습니다. 집 앞 의원급 정형외과에선 250만원을 말했는데 이곳 병원급 정형외과에선 5분의 1 정도만 나온 겁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골절 같은 간단한 수술은 엑스레이와 CT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합니다. 과잉 진료에 환자를 호구로 여기는 듯한 집 앞 정형외과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정형외과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입니다. 동네에 새로 생겼기 때문입니다.
<시사IN> 보건의료 전문인 김연희 기자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거기는 정액제 병원인가 봐요. 발가락 골절은 300만원, 허리 디스크는 1000만원 하는 식으로요” 하며 웃습니다. 웃픈 현실입니다. 비급여라는 명목 아래 환자를 돈벌이 대상으로 보는 병원이 많은 현실이요. 독자님께서도 만약 병원 갈 일이 생길 때에는 최소 두 군데 이상 다녀보시길 권합니다. 슬기로운 의료 소비자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아이는 아직도 발에 깁스를 하고 있어서 등하교 시 부모가 태워다주고 데려옵니다. 목발을 짚고 학교나 학원에 몇 번 갔는데 삼복더위에 땀이 비 오듯 해서 공부고 뭐고 정신이 없답니다. 의료기 가게에서 한 달 3만원에 휠체어를 빌려 아이를 등교시키고 오다 똑같이 빈 휠체어를 밀고 오는 학부모를 만나서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독자님이 이 편지를 읽으시는 8월의 마지막 토요일에는 길고 혹독했던 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길 기대해봅니다. 다시 독자님께 편지를 쓸 때쯤이면 혹한과 폭설 얘기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김완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