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혈압을 쟀습니다. 지나치다 설치된 혈압계를 우연히 보고 ‘한번 해볼까?’ 하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혈압계 커프가 천천히 팔을 조여올 때까지만 해도 입가에 머금었던 미소는 ‘슉’ 하고 빠지는 공기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사라졌습니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높은 숫자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두고 몇 번을 더 재봐도 비슷한 수치들이 보였습니다.
하루 종일 혈압계에 기록된 빨간 숫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호들갑인가 하다가도, 1년에 한 번씩 받는 정기 건강검진에서 매년 최고 혈압 기록을 경신하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두통이 있던 날들이 전부 혈압이 올라서 그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쟁터 한복판에서 야간 경계근무를 서는 영화 속 군인처럼, 매일 경계 태세를 풀지 않고 살고 있으니 여러 추측들이 제법 그럴싸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펼친 끝에 내린 결정이 금연이었습니다. 저는 운동을 꾸준히 해왔고 술은 몸에 안 받아 못 마십니다. 커피는 그 쓴맛과 친해지지 못했고 굳이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유일한 기호식품이 전자담배였습니다. 술도 커피도 마시지 않는데 혈압은 높고 스트레스를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담배라도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9월8일이 금연한 지 12일 되는 날입니다. 이제 막 시작한 단계지만 금연이 몸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금연 20분 뒤 심박수와 혈압이 정상화되고, 12시간이 지나면 혈중 일산화탄소 농도가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며, 2주 정도 되면 혈액순환이 개선되고 폐 기능이 향상된다는 식입니다(방금 네이버에서 검색).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변화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괴롭기만 할 뿐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늘게 피어올라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보는 건 하루를 시작하는 기지개와 같았습니다. 규칙적으로 숨과 연기를 뿜어내고 향을 맡는 그 몇 분은 저만의 의식이었습니다. 잠들기 전 샤워를 마치자마자 들이켜는 첫 한 모금은 하루의 피로를 해소하는 영양제였습니다.
그런 담배가 없어졌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듭니다. 집중이 되질 않아 일이 밀리는 느낌을 받으니 초조하고 짜증이 납니다. 편의점에서 계산을 할 때 무조건 볼 수밖에 없는 진열대 안 담배들이 계속해서 유혹합니다. 보이지 않아도 근처 어딘가에서 풍겨오는 것만 같은 담배 냄새에 본능적으로 주머니를 뒤지고 가방을 뒤적입니다. 첫사랑을 떠나보낸 그때처럼 갑자기 하늘이 무너진 듯 눈앞이 캄캄하고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마감도 너무 힘듭니다. 최근 쓴 기사와 앞으로 당분간 쓸 기사는, 아마 괴로움과 눈물로 쓴 기사가 될 것 같습니다.
저에게 담배는 단순한 기호나 습관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맞는 기폭제였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받는 위로였습니다. 그것이 한순간에 사라지니 몸과 마음에 금단증상이 찾아왔습니다. 1~2주면 증상과 빈도가 줄어든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걸 보니 저는 니코틴 중독과 의존이 심한 편이었나 봅니다.
그래도 그저 버틸 뿐입니다. 금연자들은 니코틴 패치를 붙이거나 껌을 씹는다는데, 소량이라도 니코틴을 완전히 끊는 게 아니라서 이 방법은 쓰지 않으려 합니다. 입이 심심하지 않도록 간식을 먹는 것도 방법이라지만 금연의 1차 목적이 혈압 관리라 식단도 함께 챙기고 있습니다. 운동은 꾸준히 해와서인지 딱히 다른 걸 못 느끼겠습니다. 그래서 흡연 욕구가 들 때는 스스로를 협박합니다. 니코틴을 흡입해서 잠깐 느끼는 쾌감보다 나중에 다시 금연을 시도할 때 지금의 이 괴로운 금단 증상을 다시, 더 고통스럽게 겪어야 할 거라는 식입니다. 매달 30만원 가까이 썼던 담뱃값도 떠올리고, 늘 골목 한구석에 숨어서 눈치 보며 담배를 피우던 날들, 꽁초 버릴 곳이 없어서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그대로 세탁기에 돌려버린 날들,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든 흡연 부스에 들어갔다가 머리카락과 옷, 가방에 담배 냄새만 잔뜩 배어 나왔던 날들을 계속 떠올립니다.
금연 결심을 주변에 많이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박제될 이 뉴스레터에 금연 도전기를 썼습니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드려서 송구스럽지만 독자 여러분께 알리면 어디서든 흡연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혹시 저에게 한말씀 해주시고 싶으시다면, 응원보다는 따끔하고 상처가 될 만한 말씀이 더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ex. 만난 적은 없지만 너 입냄새 진짜 심했을 거 같아 등등). 잘한다, 잘한다 해주시면 진짜 잘하는 줄 알고 방심하게 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이건 제가 쓰는 기사에 대한 피드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날씨가 많이 덥지만 곧 계절이 바뀝니다. 이 글을 읽으신 독자 여러분도 이참에 건강을 점검해보는 건 어떠신지요? 저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몰랐던 걸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이상이 없으셔도 새 계절을 맞이하며 새로운 계획을 짜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 문상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