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시사IN> 문준영 기자입니다. 입사한 지 벌써 8개월이 다 되었는데요. 뉴스레터로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금 사회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시사IN> 사회팀은 제가 기자를 꿈꾸기 시작한 이후부터 줄곧 동경해왔던 곳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치열하게 뛰어다니면서, 이야기를 창의적으로 또는 깊이 있게 풀어낼 수 있는 최적의 부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드림팀(?)에 발을 디뎌보니 현실은 녹록지 않더군요. 이 천방지축 초년생은 한 주 단위로 겨우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버지가 막 퇴근한 저한테 “너는 기획기사 안 쓰니? 몇 달짜리로, 중장기 기획 같은 거”라고 물으셨습니다. 순간 당황한 저는 “아··· 아··· 준비하고 있겠죠?”라고 답했습니다. 이게 무슨 난데없는 삼인칭 화법입니까? 제가 아버지의 질문에 제대로 ‘긁’힌 겁니다.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환경이 맞는데도, 아직 모든 게 벅찬 저 자신이 답답해서 ‘긁’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독자와의 대화’에서도 공들인 기획기사를 읽고 싶다는 독자님이 계셨습니다. 조금 느릴지라도 언젠가는 건강하고 좋은 탐사기획 보도를 보여드리고 말겠다는 말로 첫인사를 올려봅니다.
서론이 조금 길었습니다. 사실 요즘 어둡고 답답한 소식이 많다 보니 뉴스레터에서만은 유쾌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꼭꼭 숨겨둔, 선배들도 모르는(!) 저의 ‘꿈’ 이야기입니다. 제 꿈은 바로~ ‘마당 있는 집’입니다!
이 꿈을 꾸게 된 배경으로 제 어린 시절을 잠깐 설명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꽤 긴 시간을 시골에서 보냈습니다. 덜 자란 옥수수보다 키가 아주 많이 작을 때였달까요.
그때 저의 사계절은 아주 선명했습니다. 봄이 되면 발목까지 자라난 들풀을 밟으며 민들레를 따다가 반지처럼 손가락에 묶어서 놀았고요. 손가락이 보라색으로 물들 때까지 오디를 따먹었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여름날에는 우산은커녕 신발을 다 벗어놓고 친구와 깔깔 웃어대며 물장구를 쳤습니다. 가을이 오면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뻥뻥 위로 올려 차면서 까르륵 웃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면 연도 날려보고요. 겨울이 와서 눈이 쌓이면 커다란 눈사람을 여럿이서 같이 만들고 놀았습니다. 갓 입사한 신입 기자의 과거가 생각보다 많이 ‘올드’해서 놀라셨나요? 날벌레와 도마뱀 때문에 까무러친 순간도 많았는데, 지금은 행복했다는 감정만 남아 있는 걸 보니 기억이 미화된 게 분명합니다.
그렇게 즐겁게 살다 도시로 돌아왔습니다. 한참 지나고 난 다음, 대학교 1학년이었을까요. 어느 날 길을 걷다 제가 종이나 모니터만 보면서 살아온 지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공부하거나 일할 때 제 눈은 항상 내 눈높이에 맞는 것들만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계절의 변화도 옷의 두께로만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차, 내가 계절을 만끽하던 때는 어린 시절뿐이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든 언젠가 한 번쯤은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보겠다고요.
이미 수년이 지났는데도 이 꿈은 제게 여전히 1순위로서 유효합니다. 제 친한 친구들은 마당 있는 집을 보면 “저기 네가 좋아하는 집이다”라면서 제게 먼저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 덕분에 EBS의 <건축탐구 집>은 제 최애 프로그램입니다. <건축탐구 집>을 보다 보면, 당장 제 눈앞에 펼쳐져 있는 아파트와 빌라만이 제 미래 주거공간의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호화로울 필요는 당연히 없습니다. 그냥 손바닥만 한 공터만 있어도 충분히 만족할 것 같습니다. 슬리퍼를 끌고 잠깐 기지개를 켜러 나가고, 이불을 탈탈 털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합니다. 만약 운좋게 넓은 마당이 달린 집에서 살 수 있다면, 마당에 작은 평상 하나를 두고 싶습니다. “평상에서 커피도 마시고, 노래도 듣고, 아무튼 뭘 하든 재밌지 않을까~” 뉴스레터를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가네요.
드림하우스 이야기가 나오면 누군가는 제게 비용 문제를 경고합니다. 그런 집은 수리 비용이 많이 든다거나 집값이 안 오른다고요(구매하는 것부터 문제지만). 인정합니다.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마당 있는 집만을 고집하지는 않을 겁니다(역시 구매하는 것부터 문제니까요). 또 앞으로는 현실과 타협할 일이 수없이 생길 텐데요. 그때는 미래의 제가 ‘최선 다음의 차선’을 잘 찾아갈 거라 믿습니다.
제 생각은 단순합니다. 사계절이 선명했던 그때의 제가 가장 행복해했으니 언젠가 그때와 비슷한 환경에서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요. 거미줄과 곰팡이가 눈에 거슬리고, 누수와 동파가 걱정되는 어른이 되어서도 과연 제가 여전히 그런 삶을 사랑할지 역시 궁금합니다.
어쨌거나 이런 꿈이 하나 있으면, 꿈을 이루지 않고서도 기분 좋은 날이 늘어납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마당 있는 집’을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면 금세 마음이 풀리고요. 가끔은 제가 지금 아이돌이 아닌 전원주택을 덕질하고 있나 싶기도 합니다만, 기분이 좋으면 됐지요! 이게 꿈의 순기능인가 봅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독자님께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는 꿈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그 꿈을 다시 떠올려보면서 ‘피식-’ 웃어보는 건 어떨까요? 다음에 또 재밌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문준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