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사회팀의 이오성 기자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지난 편지에서는 산불 피해를 입었던 경북 의성 고운사의 나무들에서 푸르른 잎이 솟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는데, 이제 낙엽이 지는 계절이 됐군요. 아니, 11월 중순이면 진작에 낙엽이 졌어야 하는데 올해는 단풍도 낙엽도 참 늦었습니다. 올여름의 끔찍한 더위를 기억하시죠? 그만큼 온난화가 심각하다는 이야기겠지요.
이번 편지에서는 ‘자랑’을 좀 하겠습니다.
최근에 상을 받았습니다. ‘기후환경 언론인상’이라는, 꽤 거창한 이름의 상입니다. 기후위기 국제포럼을 매년 개최하는 ‘넷제로 2050 기후재단’에서 올해 제1회 기후환경 언론인상을 시상했는데요, 저를 비롯해 MBC·SBS·연합뉴스 등 6개사 소속 기자가 공동 수상했습니다.
수상 소식을 자랑하는 게 겸연쩍어서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시상식 날 저녁 방송국 8시 뉴스에 떡하니 소식이 나오더군요. 아내가 매의 눈으로 연단에 서 있는 화면 속 저를 발견하고는 한마디 하더군요. “상금은? ^^”
심사평은 이랬습니다. “2022년 ‘대한민국 기후위기 보고서’를 통해 기후 의제를 공론화하고 2025년 ‘밀양에서 멈춘 전력망 갈등, 독일에서 해법을 찾다’를 통해 세계 공통의 난제인 전력망 문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등 기후위기 시대 언론인으로서 뚜렷한 역할을 수행했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
막상 상을 받고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으니 기분은 아주 좋았습니다만, 사실 마음 한구석은 무겁습니다. 왜냐하면 기후환경 쪽 기사를 ‘지속 가능하게’ 쓰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미디어 전문가는 물론 멀쩡한 언론사 대다수가 공식적으로는 기후 기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사실 기후 기사는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빙하가 녹는다거나, 폭염 폭우가 닥친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매일 뒷머리를 잡게 하는 뉴스가 쏟아지는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자칫 ‘작년에 봤던 것 같은 그 이야기’를 반복하기는 어렵습니다. 솔직히 말해 언론사 조직에서 동료들의 눈치도 보이지요.
그래서 이른바 ‘에너지 전환’을 다루는 기사를 써보지만, 이쪽 분야는 한 발자국만 깊이 들어가도 전문가들의 별세계입니다.
RE100, IPCC 같은 용어야 이제 일반인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만, SCOPE 1, 2, 3(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분류하는 방식)나 GHG 프로토콜(온실가스 회계처리 및 보고기준) 같은 단어가 나오면 벌써 복잡해집니다. 전력 부문에서는 RPS(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제도), REC(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 SMP(계통한계가격) 같은 말을 일상적으로 쓰게 되지요. 이를테면 올해 RPS를 경쟁입찰제로 바꾼다는 게 기후위기 대응 측면에서는 꽤 중요한 뉴스였는데, 이걸 대중의 언어로 전달하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기자는 ‘홀로 전문가’의 길을 걸어갑니다. 뉴스로는 다루지 못할 전문성 넘치는 글을 블로그 등에 아카이빙하는 거지요. 기후 NGO나 학계, 관련 업계와의 네트워크는 탄탄해지겠지만, 글쎄요 대중과의 접점은 점점 멀어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듭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더 ‘에너지 전환의 그늘’에 시선이 갑니다. 올 한 해 기사를 제법 쓰기도 했지만, 예컨대 전력 공급을 위한 송전망 건설로 피해를 입는 농촌 지역의 주민들 말이지요. 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를 ‘님비’라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전 늦게 가더라도 이들의 동의를 구하고, 또 지원군으로 삼아야 정말 탄탄한 기후위기 대응의 토양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똑똑한 사람들 몇몇이 로드맵을 짜서 “따라오세요”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최근에 한 보수언론의 환경 전문기자가 ‘지구 온도 1.5℃ 억제’ 목표에 집착하지 말라는 칼럼을 써서 화제가 됐지요. 결과적으로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이행 노력을 희화화시키는 듯한 그 글의 취지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저 역시 숫자나 데이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숫자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정말로 세상이 바뀔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곧 겨울입니다. 문득 트럼프가 떠오르네요. 트럼프는 겨울만 되면 “이렇게 추운데 무슨 지구 온난화냐”라며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말을 여러 차례 했지요. 그러나 온난화로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찬 공기를 가두던 제트기류가 불안정해져 오히려 겨울 한파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과학자들이 밝혀냈지요. 올겨울 추위 앞에서 트럼프처럼 무식을 뽐내는 이들이 너무 많지는 않기를 바라며 편지를 줄입니다.
✍🏼 이오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