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정치이슈팀 이한울 PD입니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연말이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요즘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들 하지만, 유독 2025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린 듯합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 마음속 시계는 아직도 2024년 12월3일에 멈춰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날 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휴가 중이던 저는 ‘긴급 대국민 담화’ 속보를 보고 뉴스를 틀었다가 계엄 선포 장면을 마주했습니다. 곧바로 “지금 당장 ‘김은지의 뉴스IN’ 라이브를 하자”는 연락이 왔고, 택시 안에서 출연진 섭외 전화를 돌리며 스튜디오로 향했습니다. ‘밤 11시 이후 통행금지’라는 가짜뉴스에 놀라 기사님께 “조금만 더 빨리 가주시면 안 될까요”라며 다급히 말하던 기억도 납니다.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김은지 선배는 회사 자문 변호사와 통화 중이었습니다. “위험할 수 있다”는 조언이 돌아왔지만, 선배는 “잡아간다면 잡아가라고 하세요”라며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저는 겉으로는 침착한 척했지만 떨리는 손으로 섬네일을 만들며 방송을 준비했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김준일 평론가와 라이브를 시작했고, 국회에 나가 있던 기자들이 보내오는 사진과 영상이 실시간으로 스튜디오를 채웠습니다. 속보 체크, 화면 전환, 그래픽 제작까지 1년 동안 쌓아온 제작진의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날을 위해 ‘김은지의 뉴스IN’을 해왔던 거구나.’
저에게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한 순간들인데, 세상은 그날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 듯합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가해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재판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으며, 사과는커녕 계엄을 정당화하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날의 의미가 조금씩 지워지고 왜곡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파제였던 국회에서 각자 자리를 지켰던 11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2024년 12월3일 국회의장실에서 벌어진 6시간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당신의 6시간’을 제작했습니다. 그날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민주주의가 어떻게 가까스로 지켜졌는지를 담았습니다.
2025년 12월3일에는 국회 앞에서 라이브 방송도 진행했습니다. 작년 비상계엄 당시 함께 방송했던 김종대 전 의원, 김민하 평론가와 다시 현장에서 마주했습니다. 화면으로만 보던 깨진 유리창을 직접 보니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영하 10℃의 추위에 몸은 얼어붙었지만, 마음만은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올해를 돌아보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반짝이던 응원봉에 담긴 염원은 어디에 있는지, 정치개혁은 얼마나 진전됐는지, 시민의 삶은 나아졌는지, 제 자신은 얼마나 성장했는지 떠올리면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때로는 1년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해서 답답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동기 김세욱 PD가 해준 “쌓이는 힘을 믿는다”는 말을 곱씹어봅니다. 작은 변화들이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더 큰 변화를 향한 발판이 되고 있으리라 믿어보려 합니다. 그 믿음 덕분에 올해를 버틸 수 있었고, 내년을 준비할 힘도 얻습니다.
님도 한 해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따뜻하고 평안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