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향은 충남의 바닷가 ‘인근’ 마을입니다. 논과 밭은 있지만 배는 없던 집, 바다에 나가면 조개나 맛을 캐며 놀던 그런 동네였습니다. 제가 다닌 초등학교는 바다로부터 1.3㎞ 거리, 중학교에 올라가니 교실과 복도 양쪽으로 바다가 보였고,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 창가에 서서 서해로 달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되지도 않는 시구를 흉내 내곤 했습니다. 소풍이란 소풍은 죄다 바닷가였지요.
그렇게 자라서인지 저는 지금도 바다가 좋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면, 바닷가에 나가 갯바람을 한참 쐬고 옵니다. 그러면 복잡하던 생각이 조금은 정리되곤 합니다.
독자님도 꽃게 좋아하시지요? 난데없는 질문에 잠시 당황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분간 꽃게를 먹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난 6월 말,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연평도 어딘가에 꽃게 그물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 그 양도 어마어마하고 썩은 냄새가 심해 인근 해병대 장병들이 생활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달려갔더라면, 아마 그 그물만 취재하고 돌아왔을 겁니다. 사진으로도 충분히 말이 되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런저런 취재 일정이 겹쳤고, 그사이 7~8월 금어기를 지나 9월 초가 되어서야 연평도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항을 출발한 배는 두 시간 남짓을 달려 연평도에 도착했습니다. 현지에 사는 취재원께 상황을 설명하자 돌아온 말은 뜻밖에도 “그거, 아마 이미 치웠을 텐데요”였습니다.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현장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고, 취재원께서는 흔쾌히 차를 몰아주었습니다. 적환장에 쌓여 있던 그물은 거의 다 치워진 상태였습니다. 군청에 확인해보니 약 553t을 처리했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일부 남아 있던 그물에는 하얗게 백화된 꽃게들이 머리카락처럼 가는 그물에 뒤엉켜 있었습니다. 코를 찌르는 냄새를 참고 그물 위로 올라가 셔터를 눌렀습니다. 산처럼 쌓여 있던 모습을 담지 못한 아쉬움을 그렇게 달랬습니다(<시사IN> 제939호 ‘시선’ 참조).
그런데 그날, 점심을 함께 먹으며 취재원께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평도의 꽃게잡이 배는 모두 26척인데, 접경지역이다 보니 조업 시간이 일출부터 일몰까지로 제한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물을 설치하면 반드시 다시 떼어내 연평항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그물에 꽃게가 달려 있으면 각자 작업장으로 옮겨 꽃게를 떼어내는데, 살이 없거나 무르거나, 크기가 6.4㎝ 미만인 꽃게는 작업조차 하지 않고 그물째 적환장에 버려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버려진 그물은 세금으로 치워집니다.
꽃게잡이에는 크게 세 가지 방식이 쓰입니다. 안강망, 통발, 그리고 닻자망입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닻자망인데, 무게가 1t에 달하는 초대형 닻을 약 100m 간격으로 설치하고, 그 사이를 굵은 금속 와이어로 연결합니다. 다시 그 위에 철제 구조물을 얹고, 그 구조물에 머리카락 굵기의 1회용 그물을 설치합니다. 제가 연평항에 갔을 때, 어민들은 중장비를 동원해 약 10t짜리 배에 닻 네 개와 금속 구조물 두 세트를 실어내고 있었습니다.
이 1회용 그물은 설치 후 2~3일 뒤에 수거합니다. 그런데 어민들 말로는 회수율이 고작 70% 정도라고 합니다. 꽃게가 없거나 너무 작거나 무른 경우, 현장에서 그물을 버리고 새 그물을 설치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바람에 떠내려가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회수된 70%의 그물이 553t이라면, 계산상 약 237t의 꽃게 그물이 바다에 그대로 버려졌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연평도 인근에서 폐그물 수거 작업을 하는 한국어촌어항공단에 물어보니, 수거되는 폐그물 가운데 상당수가 닻자망용 1회용 꽃게 그물이라고 하더군요.
연평도만의 문제일까요? 연평도는 접경지역이라서 그나마 꽃게를 수확하려면 그물을 육지로 가져옵니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은 어떨까요. 인천시에 확인해보니 인천 앞바다에는 자망(닻자망 포함) 610건, 통발 127건, 안강망 102건이 허가되어 꽃게 조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꽃게를 어떻게 골라내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육지로 가져오지 않고 배 위에서 바로 골라낸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폐그물은 어디로 갈까요. 답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바다에 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추석, 고향에서 어업을 하는 친구들에게도 물어봤습니다. 연평도나 인천에서는 꽃게 그물을 바다에 버린다던데, 여기는 어떠냐고 말입니다. 잠시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친구들은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기도 그러고 있다. 서해나 남해, 동해 할 것 없이 꽃게잡이 배는 대부분 그럴 거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이더군요. 바다에서 그물을 회수해 와도, 수협이든 해수부든 어디에서도 그물을 제대로 수거해 처리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처리 비용을 내겠다고 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겁니다. 제발 누가 좀 처리해줬으면 좋겠다고, 네가 기자니까 해수부 장관이든 환경부 장관이든 국회 해양 관련 상임위원회든 아는 사람이 있으면 이 이야기를 꼭 전해달라고 말하더군요. 처리 비용은 우리가 부담할 테니,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달라고 말입니다.
독자님, 이제 제가 왜 당분간 꽃게를 먹지 않으려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셨을까요. 저는 바다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는 그 바다에 삶을 바쳐야 하고, 누군가는 복잡한 세상을 피해 위안을 찾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미래의 후대에게도 깨끗한 바다를 물려줘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물을 처리할 시스템이 없어 그물이 바다속에 버려지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독자님, 오늘은 이 편지를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바다를 떠올릴 때마다, 그 아래에 무엇이 가라앉아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