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신가요?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또 지나갑니다.
<시사IN>은 이미 2025년 송년호와 2026년 신년호를 발행했지만, 이 편지를 쓰는 12월31일 밤 저희는 여전히 2025년의 마지막 마감을 하는 중입니다. 예전엔 연말연시라든가 기념일 같은 이벤트성 날짜에 별 감흥을 못 느끼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듯해 아쉬움이 들곤 합니다. 몇 해 전부터 과거에 못해본 것에 대한 선망이 스물스물 피어올라 몇 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올해는 제 사전에 없을 것 같던 ‘그림 그리기’에 도전해보았습니다. 오래전 중·고등학생 시절 스케치북을 들고 미술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그림 DNA라고는 1도 없는 데다, 60~70명이 복작이는 교실에서 제대로 그리기를 배운 기억도 없습니다. 유튜브 같은 영상의 도움도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죠. 그때 이후 그림은 저에게 두려움 혹은 불가능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그림을 그리는 지인의 전시 소식이 들리면 전시장에 들러보곤 했습니다. 어느 유명 화백의 전시회에서는 ‘선 긋기 연습을 한 것처럼 보이는’ 작품도 걸려 있기에, 무엇이든 작품이 될 수 있구나, 그림이 그리 어려운 게 아닐 수도 있겠는데, 하고 감히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유튜브에서 생보초 드로잉, 선 긋기 같은 영상을 검색해 A4 용지에 직선, 곡선을 끄적이다가, 언젠가 그림에 도전해봐야지,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올해 3월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지인이 그림 선생님을 모시고 어반 스케치를 배우려는데 합류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렇게 10명이 모였습니다. 12색 물감이 담긴 작은 플라스틱 팔레트와 크고 작은 붓 2개, A4 사이즈 스케치북이면 준비물 끝. 처음 한동안은 많이 긴장되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이나마 꾸준히 그리다 보니 매번 한 장씩 그림을 완성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내가 그은 선이 모양을 갖추고 명암이 들어가 입체감이 느껴질 때면, 오잉, 이렇게 하면 그림이 되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림을 그리며 뜻밖의 소득도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그리려면 먼저 잘 보아야 했습니다. 늘 곁에 있었지만 무심히 지나쳤던 사물과 풍경,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뿌옇던 모습들이 하나둘 뚜렷하게 보이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거리에서 간직하고 싶은 모습은 사진을 찍어두기도 했고요. 내 곁의 존재들을 조금 더 잘 볼 수 있게 된 것도 꽤 경이로운 느낌이었습니다.
12월에는 멤버들끼리 그동안 그린 그림을 몇 점씩 모아 다○소에서 산 액자에 넣고, 재롱잔치에 가까운 전시를 열기도 했습니다. 처음 전시 얘기를 듣고는 ‘아직 서지도 못하는데 걸으라고?’ 하며 펄쩍 뛰었지만, 의미 있는 곳에 기부한다는 명목으로 바자회를 겸한 데다, 벽에 걸어두면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는 동료들의 말에 못 이기는 척 동참했습니다. 덕분에 내내 오글거림을 견뎌야 했지만. 방문한 지인들도 함께 즐기며 흔쾌히 바자회에 지갑을 열어주었습니다. 저도 다음엔 꼭 팔리는 그림을 그려보겠노라, 호기로운 농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빈 종이를 대하곤 긴 한숨을 내쉬는 ‘백지 공포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시작이 반이고, 시작하면 끝낼 수도 있다는 것, 더디게 가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지요. 그리고 그림이 나와 세상을 잇는 또 하나의 소통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그림 그리기(어반 스케치)를, 제 곁에 오래 머무르는 ‘반려 취미’로 가꾸어볼까 합니다.
혹시 독자님도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기만 해온 무언가가 있으신가요? 새해에는 그것을 한 번쯤 꺼내어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할까 말까 망설일 때는, 해보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들더라고요^^.
독자님, 새해에도 <시사IN>은 독자님과 함께할 것입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뜻하시는 모든 일 이루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