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정치이슈팀 권은혜 기자입니다. 날이 상당히 추운데 따뜻한 곳에 계시길 바라며 인사드립니다.
뉴스레터에서 무슨 이야길 해볼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소개해보기로 했습니다.
님은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합니다. 미술에 조예가 깊지는 않습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습니다. 다만 작품을 전시한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고, 저만의 해석으로 그림을 보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가장 최근에 본 전시는 동생과 함께 갔는데요. 일본 도쿄 우에노에 있는 도쿄 도립미술관의 <반 고흐전>이었습니다. 동생과 저는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와, 물감 진짜 많이 썼다. 이래서 생활고에 허덕였던 거 아닐까?” “왜 그림자를 초록색으로 표현한 거지?” “이 그림은 우리 집에 걸어놓고 싶다” “이 중에서 최애 그림 꼽아보자” 등. 아주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순서대로 보지도 않습니다.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에서도 보고 줄이 길어 정체된 구간은 과감히 건너뛰기도 합니다. 정말 마음에 든 작품이 있으면 전시장을 나가기 전 다시 한번 눈에 담아봅니다.
모든 전시가 항상 즐거운 건 아닙니다. 유명한 미술관에서 대대적으로 자랑하는 기획전에 가도 어떨 때는 볼 게 없어서 30분도 안 되어서 나온 적도 있습니다. 때로는 전시장보다 굿즈숍에서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요. 반대로 우연히 시간이 남아서 무료로 들어간 미술관에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 그런 전시가 제게는 2022~2023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린 <키키 스미스–자유낙하>전이었습니다. 1954년 서독 태생의 미국 여성 예술가 키키 스미스는 성별·탄생과 재생이라는 주제를 다룬 작품을 제작해왔다고 합니다. 1980~1990년대의 그림·조각·사진 등 작품이 과감하다면, 비교적 최근에 가까워질수록 주제 면에서도 조금 더 너른 우주를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2023년 2월, 키키 스미스 ‘SKY(2012)’ 태피스트리 작품을 보고 있는 저의 모습입니다.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충격을 받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던 몇 가지 작품을 소개해봅니다. ‘푸른 소녀’와 ‘SKY’ 태피스트리 작품은 미적으로 꿈결같이 아름답다는 감상에 젖게 했습니다. 내장을 라디에이터로 표현한 작품이나 늑대의 몸을 가르고 나오는 여성의 모습을 빚은 ‘황홀’ 작품에서는 어떤 해방감과 생동감을 느꼈습니다. 그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라는 존재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느낌이었달까요. 흰 머리카락을 너풀너풀 풀어헤친 채 자신의 작품을 지켜보는 키키 할머니 사진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버렸습니다. 당시 전시를 소개한 <보그> 잡지의 키키 스미스 인터뷰 기사(https://zrr.kr/QLe2mB)를 링크로 달아둘 테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들어가 보시길 바랍니다.
키키 스미스의 ‘푸른 소녀(1998)’. ⓒ시사IN 권은혜
키키 스미스의 작품 ‘소화계(1988)’. ⓒ시사IN 권은혜
그런가 하면 저를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한 그림도 하나 있습니다. 체코 태생의 화가 알폰소 무하를 아시나요? 아르누보 시대의 대표적 일러스트레이터로 불리는 알폰소 무하는 예쁜 일러스트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애니메이션 <카드캡터 체리> 속 카드에 그려진 그림이 알폰소 무하의 화풍이라고 하면 바로 아실까요?
그러나 제가 좋아하는 그의 그림은 대중적으로 유명한 일러스트는 아닙니다. 작가를 밝히지 않으면 무하가 그렸는지 아무도 모를 ‘황야의 여인’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본 것은 체코 프라하에 있는 조그마한 알폰소 무하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그 예쁘고 유명한 일러스트 그림을 수없이 지나쳐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이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여인의 강렬한 슬픔과 고통, 그리고 그 여인을 노려보고 있는 검은 늑대 무리의 눈빛까지. 그림을 보고 압도된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나중에 작품 설명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알폰소 무하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이후 1921년 굶주려 죽어가는 민중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그린 것이라는 것을요. 설명을 보기도 전에 이미 그림만으로도 그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그림 하나를 보려고 체코 프라하에 가도 좋았다고 말할 정도로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황야의 여인(1923)’ 작품. ⓒ알폰소 무하 박물관
신나서 제가 좋아하는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다 보니 편지가 길어졌네요. 님이 좋아하는 그림은 무엇인지, 전시 감상 스타일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뉴스레터 피드백으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