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님. <시사IN> 김영화 기자입니다. 그간 무탈하셨기를요.
오랜만에 좋은 소식이 있어 전해드립니다. 2월27일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인권보도상 본상을 수상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발행한 <시사IN> 제948호 커버스토리 ‘혐중에 맞선 어느 중학교 이야기’ 기획보도가 그 주인공입니다. 직접 지원했던 언론상 중에는 처음 받는 상이라 더 뜻깊었습니다.
그간 몇 차례 언론상에 지원했다가 답이 오지 않아 내심 좌절한 적도 있었습니다. 권력구조를 흔들 만한 특종도,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낸 보도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 기사는 의미가 없을까?’ 한때 스스로를 괴롭힌 생각의 끝에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라 쓰고 정신 승리라 읽습니다)은 이것이었습니다. ‘현재와 현장을 잘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다.’ 혼란스러운 취재와 마감 한복판에서 마음을 다잡게 해준 말입니다.
그래서 기록의 의무를 매번 충실히 다했느냐 물으신다면… 잠시 제가 먼 산을 쳐다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혐중에 맞선 어느 중학교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자주 되뇌었습니다. 좋은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요. 저는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윤리 의식을 볼 때 마음이 곧잘 빼앗기곤 하는데, 이번 취재를 하면서는 그런 순간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이 기사를 한 줄로 요약하면 ‘혐중 시위대가 찾아왔고 학교를 비롯한 지역사회가 대응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위기 대응도 저마다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것이라, 저절로 되는 법이 없습니다. 거기엔 환대의 어려움을 알고도 도망가지 않은 사람들, 이주 배경 학생들을 직접 만나며 사람이 아닌 사회를 바꾸기로 다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주민 집중 거주 지역을 향한 혐오적 시선에 맞서며 적지 않은 진통과 갈등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 시간들을 취재하며 ‘남몰래 성실히 쌓아온 기록들이 이렇게 세상의 불합리에 균열을 내고 있구나’ 깨달았습니다. 이번 수상이 개인적으로 더욱 값지게 느껴졌던 이유입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주최 측인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장이 안창호 위원장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주제도 아니고 ‘중국 혐오’를 다루는 보도였기 때문에요. 지난해 혐중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게 된 데는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이 부추긴 부정선거 음모론의 영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해 2월 ‘윤석열 방어권 보장’ 안건을 의결하고 탄핵 결정을 앞둔 헌법재판소를 비판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인권단체를 포함한 시민사회계는 안창호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1년간 행적들을 살펴보니 안창호 인권위 체제에서 이 보도에 인권보도상을 준다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시상식 당일까지 고심이 깊었습니다. 수상을 거부해야 하나, 수상 소감으론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 버스 창문 밖으로 ‘부정선거 의심하면 징역 10년’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 걸 보았습니다. 아무 말 없이 상을 받자니 취재원들에게 면목이 없고, 좀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습니다. 수상 소감으로 했던 이야기의 일부를, 민망함을 무릅쓰고 옮겨봅니다.
“<시사IN>이 계엄 이후 인권위 상황에 대해 비판 보도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이렇게 상을 받게 되어 기쁜 한편, 여러 질문과 고민이 남습니다. 여전히 거리에서 혐오 시위가 열리거나 혐오 현수막이 나붙어 있고 이주민을 포함한 사회의 소수자들이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런 보도에 상을 수여한다는 것은 인권위 내부가 그 가치에 공감하고 있는 뜻이라 믿습니다. 혐오 공격의 최전선에서 혐오 대응의 최전선이 된 구로중처럼, 인권위 역시 그 사명에 다시 앞장설 수 있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맞은편에 앉은 안창호 위원장을 힐끔 보았는데 별다른 미동이 없었습니다.
기사에 나오는 ‘각색 모임’ 선생님들과는 안부 연락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보도가 나간 뒤 우려되었던 소란이나 공격은 다행히 없었다고 합니다. 이번 수상 소식도 같이 기뻐해주셨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3월12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학교 인근에서 특정 인종, 국가 등을 대상으로 한 혐오 행위를 금지하는 교육환경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보도 하나로 변화를 기대하는 자의식 과잉을 물리치고,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겨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다짐해봅니다.
이야기를 너무 길게 늘어놓은 건 아닌지 조금 염려도 됩니다. 그래도 이번 수상이 안겨준 기쁨과 슬픔을 독자 여러분께 날것 그대로 전하고 싶었습니다(또 언제 받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언론 환경이 더 척박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독자님 덕분에 쓸 수 있는, 써야만 하는 기사들이 있음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정진해보겠습니다. 그럼 좋은 한 주 보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