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사진팀 박미소입니다. 짧은 봄을 보내고, 초여름을 마주하는 것 같아요. 잠깐이었지만 흐드러진 꽃들을 온전히 누리셨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장례식을 다녀왔습니다.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유가족은 제 친구가 유일했습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빈소에 갔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영정으로 처음 뵈었고, 저는 친구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그곳에는 아는 얼굴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른들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관 예배가 시작됐습니다. 작은 빈소에서 어깨를 맞부딪히며 앉았습니다. 슬픔과 막막함에 함께 울었습니다. 입관에 앞서, 아버지에게 전하는 친구의 마지막 인사를 유리창 너머로 같이 지켜보았습니다.
적막함만 흐르던 시간을 지나, 시시콜콜한 말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식탁 위에 차려진 홍어무침에서 냄새가 안 난다고, 누군가가 가져온 과자가 단백질이 많이 든 건강한 것이니 먹어보라고, 외투가 예쁜데 어디서 샀냐고. 별것 아닌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친구도 종종 같이 웃었습니다. 그렇게 고요하다가도 소란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튿날 발인을 마치고, 장지로 가는 길에 많은 친구들이 함께했습니다. 전날 친구들과 소곤소곤대며 사람이 너무 없지 않을지, 운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다 같은 마음이었겠지요.
봉안함을 들고 내려가는 친구의 뒤로 청년 열댓 명이 따라갔습니다. 모든 장례 절차를 마친 후,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상복을 벗은 친구와 저녁을 먹었습니다. 동네에 괜찮은 고깃집이라며 친구가 데려갔습니다. 뜨거운 불 앞에서 우리는 땀을 흘리며 왁자지껄 고기를 구워 먹었습니다. 밥을 다 먹고는 커피도 마시고 케이크도 먹고요. 늦은 밤까지 수다를 떨다 헤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례를 치른 이틀이 꼭 한 달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슬프고, 막막하고, 걱정이 되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 묵직하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게 자리 잡은 듯했습니다. 슬프고 힘든 상황을 함께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힘을 얻은 것 같아요.
상실의 결과물은 사라지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채워지는 것도 있다는 걸.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도,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도 온몸에 감각으로 새겨지는 것 같습니다. 비록 거대한 상실을 다 채울 순 없을지라도, ‘함께한다는 감각’은 두고두고 다시 꺼내어보고 싶은 선물 같습니다. 어쩌면 이 감각이 어떠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삶을 이어 나갈 큰 동력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동시에 세상의 수많은 상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곁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도 생각났습니다. 취재하며 들은 이야기들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이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써도 될지 물어봤는데요. 흔쾌히 허락하며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기대하는 마음을 배웠다고요. 그리고 제가 쓴 글이 친구가 받았던 그 사랑들이 전해지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고 합니다. 기대가 충족됐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제나 응원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받은 힘을 동력 삼아, 앞으로 님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 꾸준히 전하겠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세요. 푸르른 녹음을 마음껏 즐기시기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