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오늘 독자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궁리하다가, 지난주 잠깐 다녀온 초등학교 운동회가 떠올랐습니다. 요즘 운동회니 소풍이니 학교에서 많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감사하게도 저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선 그래도 격년으로 운동회를 열어주시더라고요. 하늘에 만국기가 짱짱하게 걸리고 아이들 발구름에 뭉게뭉게 운동장 흙먼지가 올라오는 모습에 저도 괜히 가슴이 뛰었습니다.
저는 회사 일 때문에 잠깐 경기 몇 개만 보고 나왔습니다만, 퇴근해서 보니 아이 얼굴이 발갛게 익은 것이 운동회 열기가 가히 짐작되더군요. 아이는 이래저래 청팀(본인 팀)이 점수를 제대로 못 받은 것, 백팀(상대 팀)이 부당하게 점수를 많이 받은 것 등등 점수에 관한 이야기를 쫑알쫑알 늘어놓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청팀이 졌다면서 내내 씩씩대고 분해하기에 물었습니다. “그래서, 운동회 재미없었어?”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만들며 대답하더군요. “아니, 그럴 리가.”
요즘 운동회가 사라져가는 이유 중 하나로, ‘승패’에 민감한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제기되는 민원이 한몫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몇 해 동안 운동회를 지켜보다 보니 실제 행사 진행 업체가 그 부분에 유독 신경 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청팀이 연달아 잘하면 백팀에 일부러 응원 점수를 많이 주고, 백팀이 점수를 크게 내면 ‘자, 이거 연습경기였어’ 하면서 다시 시키는 식입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점수 차이를 만들어가다가 막판 한두 경기에서 10~20점 차만 내고 끝내는 묘를 발휘하더군요. 아니면 요즘은 아예 동점을 내 ‘모두가 승자!’ 결론으로 갈 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이러니저러니 다 머리 아프다며 운동회를 없애버리는 결론으로 가기도 한다고요. 이런 식의 의사결정 과정이 운동회뿐 아니라 소풍, 수학여행, 운동장 축구·야구·피구 모두에 적용되고 있는 게 지금의 학교 풍경이라고요.
글쎄요, 뭐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즐거운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의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요. 문제가 많다면 개선해야 하고 예전에 하던 방식이 꼭 정답도 아니고요. 다만 단 한 번의, 한 명의 경험만으로도 결론을 확정하는 일이 요즘은 점점 잦아지는 느낌이라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특히 목소리가 큰 누군가 한번 거세게 의견을 내면 그것이 여론이고 대세인 양 포장됩니다. 결국 조용한 다수의 생각, 진짜 여론과는 반대 방향으로 무언가가 정해지고 그 후과는 전체가 감당하게 되죠. 이런 일이 학교뿐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비슷하게 많아진 것 같습니다.
가끔은 궁금해집니다. 이런 현상에 누가 가장 책임이 클까? 보통은 큰 목소리로 여론을 호도하는 사람의 탓으로 돌립니다. 하지만 민원의 내용과 경중, 우선순위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의사결정권자에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일단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그게 점점 더 크고 불합리한 민원으로 돌아와 결국은 공동체를 망가뜨릴 텐데 말이죠.
그리고 또 하나, 조용한 다수에게는 책임이 없을까요? 아무 목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쯧쯧 혀만 차며 지나치는, 저 같은 사람들이요.
그래서 조만간 기회가 닿으면 학교에 민원을 하나 내려고 합니다. 선생님과 면담할 기회가 있거나 학교에 이런저런 만족도 조사 의견서를 쓸 일이 있으면 이런 의견을 전하려고요.
“올해 운동회 아이가 너무 신나게 즐겼습니다. 승패를 떠나 운동장에서 열심히 달리고 마음껏 함성 지를 수 있는 그 시간 자체가 아이들에게 참 귀중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으실 텐데 이렇게 학생들에게 좋은 추억 쌓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이들 위해 최선의 교육활동을 고민하는 학교와 선생님들을, 늘 응원하고 지지하겠습니다!”
꼭 ‘불만’만 민원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조용한 다수도 가끔은 목소리를 내줘야 할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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