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사회팀에서 기사 쓰는 김다은입니다. 오늘은 사진 한 장을 소개하며 뉴스레터를 써보려 합니다.
7월31일, 메신저로 사진이 몇 장 왔습니다. 색동원 공대위 활동가님이 보내준 사진인데요, 그중 한 장은 꽤 여러 사람이 웃고 장난치며 찍은 것이어서 오래 눈여겨보았습니다. 익숙한 얼굴들이 있어 한 사람씩 반가운 마음으로 살펴보다, 사진 맨 앞줄에 희미하게 웃고 있는 모자 쓴 이를 보고 사진을 확대해서 표정부터 액세서리, 옷매무새까지 하나하나 눈에 담듯 살펴보았습니다.
늘 보던 하얀 손목시계, 익숙한 민트색 휴대전화 목걸이 스트랩. 목에는 밝은 색깔의 손수건을 멋스럽게 두르고 있는 사람. 오른쪽 손을 동그랗게 말아 쥐고 다른 한 손은 브이자를 하고 있는, 하정호씨였습니다. 로봇과 기계를 좋아하는 하정호씨는 액정이 있는 하얀 손목시계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스마트워치를 쓰면서 화면을 두드리는 것을 자주 봤기 때문인지 그는 종종 자신의 디지털 시계 화면을 톡톡 두드립니다. 편마비가 있어 손수건으로 입을 훔치곤 하는데 정호씨가 목에 둘렀던 다양한 손수건을 떠올려보니 그것 또한 재미있습니다. 이날은 여름이라 활동 보조사분이 가볍고 밝은 색을 준비해주신 것 같았습니다.
두 달 전인 6월, 저는 하정호씨를 만나기 위해 자주 인천을 방문했습니다. 만나서 함께 보낸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정호씨에 대해서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아주 오래 알던 사람 같기도 합니다. 하정호씨는 인천 강화군에 있는 중증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에서 6년가량을 살았던 거주인입니다. 그리고 색동원에서 가장 먼저 ‘탈시설’을 하고 지역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자립생활인이기도 합니다. 정호씨가 색동원을 나오던 날, 그가 살아온 55년의 시간을 담고 있다기엔 너무 단출한 짐 때문에 어딘가 머쓱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계절 입을 옷과 침구, 칫솔·치약 같은 위생용품과 색동원에서 쥐여준 다량의 비누와 롤 티슈. 그런 것들이 전부였습니다. 그중 정호씨의 취향이 담긴 물건은 로봇 2개와 색연필, 컬러링 스케치북, 그리고 노래가 저장된 USB 하나였습니다. 그 짐들은 뭐랄까요,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 증발해버린 것만 같은 묘한 허탈감. 그것을 제가 감히 봐도 되는지 조금은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누군가 ‘이상하다’라고 말해주기 전까지, 그래서 그것을 ‘바꿔보자’고 말하기 전까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목격자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하정호씨는 누구일까요. 저는 그에 대해서 알고 싶었습니다. 저는 한국어로 소통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인데요. 사실 성격도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이 별로 없는 편이라 비언어적 소통에는 영 젬병입니다. 그런 점에서 언어를 제외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대회가 열린다면 저는 꽤 하위권에 머물 것입니다. 정호씨는 한국어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능숙하게 표현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 대신 짧은 어절의 소리, 손동작, 표정을 이용합니다. 저는 정호씨를 만나는 동안, 그가 저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자주 읽어내지 못했고 그럴 때면 조금 멍청한 웃음을 지었던 것 같습니다. 한두 번 만났을 때만 해도 나는 하정호씨가 어떤 사람인지 결코 읽어내지 못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가 한 권의 책이라면, 저는 완전히 실패한 독자가 되리라고요.
하지만 몇 번 만남이 더 이어진 후 그의 환대를 의심 없이 수용하게 되면서 저는 더 이상 바보 같은 웃음을 짓지 않고도 그의 옆에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정호씨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의 온유함과 집중력, 적극성 같은 것이 눈에 보이듯 선명히 다가왔습니다. 난독의 영역이 아닌 수용의 영역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저 썰물처럼 밀려와 내 안에 쌓이는 것들이었습니다.
그가 짜증을 낸 이야기, 화를 낸 이야기,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저를 향하더라도 같이 한번 헤쳐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정은 그런 식으로 쌓아나가는 것이니까요. 맞습니다. 저는 정호씨와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문세의 옛사랑, 하얀 기정떡, 사과당근주스, 트랜스포머 로봇, 슈퍼윙스 퍼즐. 하정호씨의 자립생활은 이렇게 그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는 친구들을 만들어가는 시간으로 채워지리라 짐작해봅니다. 저도 정호씨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가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의 이웃, 그의 친구가 되기를요. 그가 무더운 이 여름, 오늘 저녁엔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정호씨는 모르겠지요. 제가 얼마나 자주 그에 대해서 생각하는지 말입니다.
‘색동원 사태 그 후, 탈시설한 정호씨의 자립생활기’ 기사를 준비하며 색동원 거주인들의 심리분석 조사를 진행한 우석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 전지수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색동원 피해자 심층조사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장애인의 마음을 바라보는 일을 하는 그에게, 편견과 차별을 겪는 장애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전지수 교수의 답변을 독자님과 나누고 싶습니다.
“색동원을 퇴소하고 가족과 사는 분이 계셨다. 어떤 점이 좋냐고 물었는데 “원하는 시간에 밥 먹고 원하는 시간에 잘 수 있어서 좋다”는 거다. 우리는 피해자들이 폭력을 피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시설을 나와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자유가 주어질 때 비로소 피해가 회복되는 것이다.
2019년 발생한 전북 장수 벧엘의집 장애인 학대 사건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중증장애인분이 탈시설을 하게 되었는데 연구팀과 정이 많이 들어 새집도 방문하고 인연을 이어갔다. 연말에 큰 어묵차를 빌려 아파트 마당에서 주민들에게 어묵을 나눠드리며 그분과 떠들썩하게 놀았다. 지금도 지역에서 잘 살고 계시고 장애인 투쟁 현장과 연대하시더라. 얼마 전 탈시설 장애인상도 받으셨다고 한다.
다리가 불편해서 장애인 게 아니라, ‘다리가 불편해서 어딘가를 못 가기 때문에’ 장애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들이 어디든 갈 수 있게 되면, 어디에서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장애인이라서 겪어야 하는 지금의 폭력과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달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요구는 단순합니다. 지하철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라. 다리가 불편해도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는 일. 이 당연한 변화를 말하는 이들을 향한 폭력이 중단되길 바랍니다.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