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지난주 일요일. <시사IN> 달리기 동아리 ‘런IN’ 모임을 위해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서울 월드컵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집에서 나와 바깥 공기를 마주하자마자 ‘입추’라는 단어가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그간 폭염 속에서 느끼지 못한 기분 좋은 서늘함이 반가웠습니다.
5년 전, 달리기를 꾸준히 해본 적 있습니다. 당시 만나던 사람과 이별 후, 6개월가량 거의 매일 달렸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자꾸 옛 생각이 나서, 집 앞 개천을 무작정 뛰었습니다. 천을 따라가다 보면 길고양이 급식소가 나왔는데, 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헤어진 친구와 함께 살던 고양이가 떠올라 눈물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눈물을 훔치며 뛰었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소리를 지르며 달리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몸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식단과 병행해 살이 10㎏ 넘게 빠졌고, 5㎞ 정도는 쉬지 않고 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뛰다 보니 10㎞, 하프, 풀 마라톤 완주에 성공했습니다. 여러분! 달리기는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별을 계기로 러너가 된 성공담이라면 이런 식의 전개가 펼쳐졌겠지만, 5㎞까지 뛰었다는 게 제 이야기의 진실입니다.
물론, 마음속 상처는 풀 마라톤 완주 메달을 걸어도 될 만큼 아물었습니다. 그즈음부터 이별의 고통보다 달리기하러 집 밖을 나가는 게 더 힘들어졌습니다. 길고양이들을 봐도 눈물이 나지 않았고, 어느 날은 뛰지 않고 고양이랑 놀기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눈물런’도 ‘고성방가런’도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뛰는 빈도가 줄더니, 거의 뛰지 않는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달리기 거리 기록은 5㎞에서 점점 줄었고, 몸무게만 연일 최고치를 갈아 치웠습니다.
이별을 한 것도 아닌데, 요즘 부쩍 다시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왜일까 생각하다, 예전에 읽은 김연수 작가의 <지지 않는다는 말>에 나오는 달리기에 관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한 뒤로 나는 어쨌든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위대한 일을 하든, 변변찮은 일을 하든 시간은 흘러간다. (…) 그러므로 우리는 더 많은 공기를, 더 많은 바람을, 더 많은 서늘함을 요구해야만 한다. 잊을 수 없도록 지금 이 순간을 더 많이 지켜보고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이 맛보아야만 한다. 그게 바로 아침의 미명 속에서도 우리가 달리는 이유다. 그게 바로 때로 힘들고 지친다고 해도 우리가 계속 살아가는 이유다.
매일 같은 시간에 <김은지의 뉴스IN> 방송을 내보내다 보면, 시간이 흐른다는 걸 자꾸 잊습니다. 어제 무얼 놓친 것은 아닌지, 내일은 뭘 해야 하는지 생각으로 가득 찹니다. 달리는 순간엔 오로지 현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두 다리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이는 하늘과 나무,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호흡과 심장소리. 돌아보면, 5년 전 실연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었던 것도 하루하루에 집중한 덕분인 듯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저를 현재로 끌어내주는 ‘런IN’ 모임이 고맙습니다. 지난달엔 남산공원을 뛰었고, 이번 달엔 월드컵공원을 뛰었습니다. 출발점에는 형형색색 옷을 입은 러너로 북적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른 아침부터 달리기를 위해 나오다니. 각자의 뛰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막 결승점에 도착해 땀을 흘리는 러너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큼지막하게 썰린 새빨간 수박을 한 입 가득 베어 물더군요. 한참 동안 수박을 먹는 그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 수박은 얼마나 느리게 달콤했을까요.
언젠가 저도 상상만 해본 10㎞, 하프, 풀 마라톤을 경험할 날이 있을까요. 결승점엔 새빨간 수박도 있을까요. 우선 상쾌한 공기를 맛보며 다시 5㎞부터 뛰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더 많은 공기를, 더 많은 바람을, 더 많은 서늘함을 느끼는 날들이 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