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지난번 뉴스레터를 언제 썼는지 보니 올해 3월이더라고요. 그사이 반년이 흘렀다는 사실에 잠시 정신이 아찔해졌습니다. 정치팀에 온 뒤로 순간 이동을 했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돌이켜 보면 6월 지방선거, 8월 민주당 전당대회, 9월 이재명 대통령 기자회견까지 꽤 굵직한 정치 이벤트들이 있었네요. 그건 그거고, ‘뭘 했다고 벌써 10월인가’ 하는 탄식이 나오는데요. 그래도 무시무시했던 여름을 간신히 지나와서인지 청명한 날씨만큼은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완연한 가을입니다.
지난 6개월 사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출입처가 달라졌습니다. 원래 국회를 출입하다가 올해 3월부터 청와대를 출입하며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사실 <시사IN>은 출입처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매체로 알려져 있어 이런 소개가 낯선데요. 다만 정치팀에 한해서 국회를 출입처로 삼고 있습니다. 국회는 온갖 사회적 이슈가 모이는 곳이다 보니 다른 출입처에 비해선 꽤 개방되어 있는 편입니다. 실제로 정당의 공식 일정과 브리핑을 챙기거나, 때로 의원실을 방문해 자료를 받기도 하고,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 뒷이야기를 듣기도 하죠. 자유도와 활용도가 꽤 높은 출입처입니다.
사실 <시사IN>이 출입처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출입처가 정해지면 기자의 취재 범위가 자연스럽게 그 기관의 일정에 맞춰지기 쉬운데요. 기자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이슈를 파고드는 심층 취재에 한계가 생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출입처 기자단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폐쇄적 문화가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기도 하죠. 물론 소규모 매체의 현실적 제약도 있지만, 기관보다는 이슈를 중심으로 취재해온 방식이 <시사IN>만의 ‘다른 보도’를 만들어온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3월 청와대 출입을 시작하면서 고민이 적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게다가 뉴미디어 풀단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기자단이라 여기저기서 관심이 꽤 크더라고요. 그만큼 ‘청와대 근접 취재를 누구에게 허용할 것인지’가 그 자체로 공적인 사안이라는 뜻이겠지요. 청와대 출입 매체는 대통령 경호와 보안 문제로 엄격히 제한되지만, 사실 정권마다 출입 매체의 허용과 지위 박탈을 두고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출입처 개방이라는 차원에서 <시사IN>에도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당사자가 된 저 역시 나름대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유튜브와 시사주간지, 두 가지 도구를 통해 최고 권력기관의 고민과 위기 등 내부 이야기를 가까이서 면밀히 담아보겠다고요.
그러나 웬걸, 6개월이 흘러가는 내내 어쩐지 전학생 같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확실히 청와대는 국회에 비해 폐쇄적이고 기자가 지켜야 할 룰도 많습니다. 무엇이 엠바고 파기인지, 또 어디서부터 보도할 수 있고 보도할 수 없는지 이해하는 것부터 쉽지 않더라고요. 취재하고 기사만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출입처 규칙 등 꽤 많은 에너지를 그 밖의 것들에 쓰게 된달까요.
가장 당황스러운 건 ‘도둑맞은 집중력’입니다.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외교·안보·국방 등 전 분야 이슈가 매번 쏟아지다 보니 주의가 상당히 산만해집니다. 검찰개혁이나 범여권 계파 갈등 같은 이슈 하나도 따라가기 벅찬데 미국과 이스라엘은 왜 갑자기 이란 전쟁을 일으켰고, 한국은 어쩌다 호르무즈 파병 논의에 휘말리게 되었을까요. 최근엔 북한군 포로 송환 공개를 둘러싼 우크라이나와의 진실 공방에 이어 며칠 전에는 DMZ 지뢰 사고까지 터졌습니다. 매번 기사를 쓰지 않더라도 관련 브리핑을 제대로 이해하고 질의해야 하니 내가 뭘 또 놓쳤나, 혼자 뒤처지진 않을까 하는 ‘포모 증후군’이 찾아옵니다. 이런 곳에서 주간지 기자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문득 외로움과 막막함이 커졌습니다.
여러 고민이 이어지던 중, 우연히 30년간 백악관을 취재해온 <뉴욕타임스> 기자 피터 베이커의 강연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2024년 9월12일 한 대학에서 “뉴스 사이클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면서, 언론이 이 모든 것을 쏟아내느라 잠시 멈춰 ‘이게 다 무슨 의미지?’라고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위험하다”라고 말했는데요. 역대 미국 대통령 5명에 관한 수많은 기사와 저서를 집필했다는 그가 내놓은 해법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같은 말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정보를 제공하고,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글쓰기를 함으로써 스스로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독자들이 듣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확인한 진실과 사실을 써야 합니다.”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글쓰기라니, 너무 어려운 목표가 아닌가 싶다가 사실 중요한 건 출입처 그 자체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디서든 척척 적응하는 ‘메타몽’ 같은 사람이면 좋을 텐데 저는 아무래도 확신보다는 의심이, 빠른 속도보다는 고민에 시간이 걸리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따라잡겠다는 조급함은 조금 내려놓고, 대신 한 가지라도 제대로 보고 오래 들여다보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다음 뉴스레터를 쓸 때쯤에는 “이제 좀 적응했습니다”라고 쓸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숨 가쁜 일상, 막막한 업무로부터 잠시 거리 둘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조금은 여유롭고 더 단단해지는 가을을 맞이하시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