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능한 사랑〉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솔직히 불륜을 다룬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쪼그려 앉은 채 고개를 들어 서 있는 조인성을 바라보는 전도연. 그리고 그런 전도연과 어린 아들이 가족사진처럼 설경구와 함께 창문 앞에 서 있는 포스터를 보며 막연히 짐작했습니다.
님은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을 보셨나요? 감독의 전작들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이창동이 그려내는 불륜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라는 호기심까지 품고서요.
그런데 첫 장면부터 놀랐습니다. 제가 예상한 범주를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사람들, 해고 노동자의 자살, 무겁게 가라앉은 빈소…. 눈물이 났습니다. 제게 이 영화는 누가 뭐래도 쌍용차 노동자들의 이야기였습니다.
SP중공업에서 해고된 호석(설경구)과 아내 미옥(전도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들을 기록하려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남편 상우(조인성)를 둘러싼 갈등이 영화 전체에 긴장을 불어넣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를 특정 기업에서 벌어진 사건으로만 받아들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을 취재했던 저로서는 이 영화를 쌍용차 사태에 관한 다큐멘터리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9년 쌍용차 사태는 비정규직을 포함해 3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서 노동자들이 옥쇄 파업을 벌이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함께 살자”라고 외치는 노동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를 투입했습니다.
두 달 넘게 이어진 파업은 그렇게 끝났지만, ‘쌍용차 사태’는 그 뒤 더 깊어졌습니다.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이 자살과 돌연사 등으로 잇달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수가 33명에 이르렀습니다. 또 누군가 숨졌다는 소식이 취재 발제로 올라올 때마다 편집국이 깊은 침묵에 잠겼던 기억이 납니다.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도 파업 노동자들을 옥죄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배춘환 독자는 2013년 크리스마스에 4만7000원을 <시사IN>으로 보내왔습니다. 47억원은 너무 큰돈이지만, 10만명이 4만7000원씩 내면 되지 않겠느냐는 소중한 마음도 함께 전했습니다.
그 편지에서 시작된 ‘노란봉투 캠페인’의 뜻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인 2025년 8월,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 통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쌍용차 사태를 조금씩 잊어가던 제게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던진 충격파는 컸습니다.
‘아직도 쌍용차를 잊지 않은 사람이 있구나.’ 이러한 생각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 이창동 감독 자신은 아닐까 하는 데까지 이어졌습니다.
<가능한 사랑>은 사랑과 계급, 노동과 고통, 관계와 저널리즘, 재현의 윤리 등 다양한 키워드로 읽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를 조금은 단순하게 읽고 싶었습니다. 작품이 관객에게 닿는 순간 각자의 경험과 시선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예지라는 인물에게 자꾸 눈길이 갔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재현하기로 결심한 순간, 우리는 끝없는 실수와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지는 그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그래서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나도 저런 적이 있지 않았나’ 싶어 제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설명적인 인물인 예지는 제목을 이해할 실마리가 되는 말을 직접 건넵니다. 재벌 3세 정도로 묘사되는 남편 상우는 해고 노동자들의 다큐멘터리를 찍으려 애쓰는 예지에게 그런 너를 좋아하고 존중한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해고 노동자가 되려고 애를 쓴다.” 그러자 예지는 반박합니다. “나는 그들이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려고 하는 거다.” (기억에 의존해 옮긴 대사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가능한 사랑’이라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이런 사랑도 정말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지는 이 영화의 제목 앞에는 사실 한 단어가 생략돼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가능한 사랑.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재현하는 일에는 언제나 오류와 한계가 따릅니다. 그렇더라도 이해해보려는 마음, 잊지 않으려는 노력, 끝내 사랑해보려는 시도까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겁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다시 기억하게 만든 이 영화가 제게는 바로 그런 시도처럼 다가왔습니다.
짧은 극장 개봉을 마친 이 영화는 오는 11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고 합니다. 님도 그때 꼭 한 번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어떤 사랑을 발견하셨는지 제게도 들려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