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를 2주쯤 앞둔 시기에 다시 대장동 개발사업이 사활을 건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각 캠프가 ‘정영학·김만배 녹취록’을 자기 입맛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경제 부문 대선 토론에서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은 영장 들어오면 죽어(개발업자 김만배의 발언)’라는 문구가 적힌 패널을 치켜들었습니다(이하 호칭 생략). 녹취록의 이 문구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만배가 윤석열의 약점을 갖고 있었다’라고 풀이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윤석열이 사법농단 수사 때문에 판사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영장이 법원으로 청구되면 판사들에게 의해 죽는다’로 해석합니다. 대화에서 한 구절만 도려내 자신의 주장에 활용한 이재명의 방식은 그리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이하 호칭 생략)는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이 녹취록을 합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활용해왔습니다. “천화동인 1호 지분 절반이 그분의 것(김만배)”이란 문구에서 ‘그분’을 이재명이라고 우긴 것입니다. 최근에도 “(이재명이) 도시개발을 한다고 해놓고 3억5000만원을 넣은 사람(화천대유 관계자들)이 8500억원을 받게 하는 경우가 어디 있나”라고 외치는 중입니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주장입니다. 화천대유 관계자들이 직접 넣은 돈은 3억5000만원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조달(중개)한 자금 규모는 5000억원에 달합니다. 만약 대장동 개발사업이 실패했다면 이들은 영원히 못 갚을 빚더미에 짓눌리고 있을 겁니다. 그들의 자금흐름 가운데 일부가 개발사업의 착수 및 성패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치권과 법조계 인사들에게 뇌물로 전달된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팩트’입니다. 윤석열이 검사 시절에도 피의자들을 이렇게 ‘공정하고 상식적으로’ 처리해왔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두 후보 모두 대장동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재명은 이 사업의 최종 결재권자였고 관련자 중 일부는 그의 측근입니다. 윤석열은 대장동 개발업자에 대한 저축은행의 부실 대출을 ‘봐주기 수사’했다거나 부친의 자택 매매 같은 의혹들을 아직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이 근거 없는 자신에 넘쳐 상대방을 ‘몸통’으로 부르는 광경에 유권자인 저로서는 ‘우리를 바보로 보나’란 모욕감을 느낄 뿐입니다. 검찰은 왜 수사를 늦추면서 녹취록만 찔끔찔끔 내놓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대선이 ‘중상모략 경쟁’으로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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