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임기 동안 가장 가슴 뛰었던 순간을 물어보신다면, 2018년 4월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라고 답하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선 시장경제가 비공식적으로나마 광범위하게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민간 차원에서 크고 작은 자영업들이 수없이 나타나고, 국영기업들도 경영에 시장경제 요소를 대폭 도입하게 됩니다. 장마당이 합법화되고, 개인이 주택을 거래하며, 은행이 없는 북한에서 소액 대출과 송금, 무역결제 기능까지 수행하는 개인 금융업자가 등장했습니다. 비록 경제특구 내에서지만 회계, 행정소송 등 시장경제 제도가 법제화되기도 했습니다.
기존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개인’은 집단의 구성단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개인이 자신의 손익을 기준으로 다른 개인과 ‘교통’하는 공간입니다. 시장경제의 발전은 ‘개인’의 존재감이 강화된다는 의미입니다. 집권 세력은 ‘국익’과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도 비공식적인 시장과 개인을 법률적으로 보장할 필요를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개인이 국가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상태를 법치주의(‘국가는 법률에 의해서만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라고 부릅니다. 시장경제는 법치주의를, 법치주의는 시장경제를 추동합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기도 합니다. 저는 2018년 당시의 남·북·미 정상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과 북한 민주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북한에 자본과 시장경제뿐 아니라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수출할 만한 역량의 나라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 대화가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더니 급기야 지난 3월 말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으로 미국 본토에 대한 타격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미국 워싱턴의 정재민 편집위원이 보낸 북한 전문가 인터뷰를 읽으며 몹시 막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전망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 등 강도 높은 도발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국내 정치 상황과 대북 불신으로 인해 타협안을 내놓기 힘들 겁니다.
한국의 새 집권 세력이 대선 기간에 시사한 바대로 대북 강경책 일변도로 간다면 한반도 긴장 국면이 훨씬 더 고조될 조건들이 거의 완벽히 갖춰집니다. 〈시사IN〉은 이와 관련된 객관적이고 심도 깊은 보도를 이어나갈 것입니다. 2018년에 제가 품었던 꿈은 허물어지고 말았지만,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지의 낙관’만은 계속 유지해나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