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중학교 시절에 ‘물난리’를 세 번 겪었습니다. 집에 물이 들어찼고, 한 번은 인근 고등학교로, 두 번은 이웃의 아파트로 ‘피난’을 갔습니다. 첫 번째 물난리 때는 너무 어려서인지 기억이 흐릿합니다. 인근 학교로 대피했고,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그때 기억과 두 번째 ‘물난리’ 기억이 섞인 듯합니다. 한 번은 새벽에 가족이 피신했습니다. 골목을 나오니 누군가 하얀 스티로폼을 타고 다니는 걸 본 기억이 나고요.
또 한 번은 낮이었는데, 집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할 때가 생각납니다. 혹시 모르니 물에 젖으면 안 되는 가전제품을, 그나마 조금 위치가 높은 책상 위로 올려두었더랬습니다.
그래도 집이 제일 안전하다 여겨, 방에 물이 차기 직전까지 집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수해로 숨진 일가족도 마지막까지 망설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밖에 폭우가 내려도 집에 들어오면 안심하는 법인데… 반지하 집에서 숨을 거둔 그분들의 사연에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115년 만의 폭우라고 합니다. 어찌할 수 없는 ‘천재’일까요? 막을 수 없는 재난도 있겠지요. 그런데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집에서 재난 관련 지시를 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3월22일 <한겨레>의 보도를 한번 볼까요?
‘대통령이 서울시내에서 12㎞ 거리를 매일 출퇴근하는 것도 경호와 안전, 시민 불편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건 퇴근 이후 상황이다. 대통령은 국가안보의 책임자로 안보 위해나 재난 상황은 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할 수 있다. 윤 당선자의 서초동 집에서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지하 벙커)까지 거리는 약 11㎞다. 평상시 30여 분 거리로, 아무리 교통 통제를 한다고 해도 청와대 관저에서 지하 벙커로 이동할 때(1분 안팎)보다 대응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한겨레> 기사 ‘윤석열 자택→지하 벙커 11㎞…‘3곳 생활’ 위기대처 가능할까’ 중).
일가족 세 명이 숨진 반지하 방 앞에 쪼그려 앉아 대통령이 하는 말도 ‘유체이탈’ 화법 같습니다. 퇴근할 때 보니까, 아파트에 침수가 시작되더라, 이런 말이었지요. 그때라도 차를 대통령실로 돌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세 번의 ‘물난리’ 때 가장 기억나는 것은 집 곳곳의 진흙과, 마당에 널브러진 진흙투성이 집기들과, 몇 달 동안 방 안에 핀 곰팡이였습니다. 그 많은 쓰레기를 어떻게 치웠는지….
수해로 피해를 본 이들에게 정말로 제대로 지원해주기를 바랍니다. ‘대통령이 있는 곳이 바로 상황실’ 같은 소리는 이제 그만 좀 하고.